“지금 시대에 우리에게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직접 찾아주시는 걸로 보여주는 것 같아 감독으로서 큰 떨림과 큰 감사함이 앞선다.”
‘명량’ 김한민 감독의 말에는 역대 최다 관객 스코어를 경신한 상업적 고마움보다 이순신 장군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한 관객에 대한 감동이 앞섰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7년 영화
빅스톤픽쳐스는 지난 2010년 1월 29일 설립한 작은 규모의 영화 제작사다. 이 작은 제작사가 수년간 수십 편의 영화를 제작한 대형 제작사도 하지 못한 경이적 업적을 이뤘다. 영화 ‘명량’의 1700만(이하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 관객 돌파는 빅스톤픽쳐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한순간에 불러일으켰다. 수익 규모에 있어 명필름, 영화사 집 등 오랜 시간
“위 빌드 아워 퓨처(We build our future).” 크롬엔터테인먼트(이하 크롬)의 슬로건이다. 황현창(36) 크롬 대표는 크롬스튜디오 사업을 영위할 때도 같은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는 “이 슬로건에서 중요한 건 ‘위(We)’, 즉 ‘우리’다”며 크롬의 소속 직원과 아티스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크롬엔
조금은 작다 싶다. 하지만 설립된 지 2년이 갓 지난 신생기획사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작은 편도 아니다. 서울 강남 논현동의 어느 한 골목, 하얀 글씨로 ‘크롬엔터테인먼트(Chrome Entertainment)’라고 새겨진 파란 띠의 간판을 화살표 삼아 내려가면 크롬엔터테인먼트(이하 크롬)의 모든 것이 담긴 장소가 펼쳐진다.
로비를 지나 안쪽으로 깊숙이
송승환 대표는 대중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1964년 7세 때 KBS 아역 성우로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종합병원’, ‘영웅시대’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연기자로 대중과 만났다. 또 1980년대 초반 KBS 2TV ‘젊음의 행진’, ‘가요 톱텐’ 등의 쇼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인기를 모았다. 이처럼 전천후 청춘스타로서 활약을 펼쳤던 송승환은 미국 유학
비언어극(넌버벌 퍼포먼스)인 ‘난타’는 연극과 뮤지컬의 장르만이 낯익은 국내 공연계에서 독보적 길을 개척해 왔다. 그 중심에는 “국내 최초 전용관 시스템 도입”, “아시아 최초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전용관 설립” 등 수많은 최초의 타이틀을 얻어내며 오늘날 ‘난타’를 탄생시킨 PMC 프러덕션(이하 PMC)이 우뚝 서 있다.
최근 PMC의 사무실이 위치해
서울 강남의 삼성동 골목길, 큰 대로를 지나 길모퉁이를 따라 돌면 통유리로 된 7층짜리 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해당 건물 6층 사무실 앞에는 알록달록한 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일명 ‘메시지나무’에는 좋아하는 배우를 향한 따뜻한 메시지카드가 여기저기 열매처럼 매달려 있다. 육각형 모양마다 김현중의 사진이 담겨있는 축구공도 시선을 끈다. 노란 돼지 저금통 안
“키이스트는 나의 전부다. 나의 역사이고 삶이다. 매니저는 라이선스(license·면허)가 없다. 1차적으로 배우에게 평가받는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다. 그렇기에 매니저를 하면서 오는 희열은 값를 매길 수 없다.”
훤칠한 키에 구릿빛 피부,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중저음의 목소리로 투박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훈훈한 매력을 가진
“관객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오르는 그 순간, 공연 기획자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예스컴이엔티의 윤창중 대표는 30년 동안 한국 공연계를 지켰다. 음악을 좋아하던, 열정과 패기로 뭉친 청년은 부단한 노력과 도전으로 공연계의 거목이 됐다.
30년 동안 공연계를 이끌며 부침도 있었다.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의 실패는 당시 무려 12억원의 손실을
인천 송도의 여름은 어느 곳보다 뜨겁다. 국내 록 페스티벌의 효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해마다 어김없이 인천을 록의 성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성지의 중심에는 한국 공연계의 역사를 온몸에 아로새긴 간직한 ㈜예스컴이엔티(이하 예스컴)가 있다.
예스컴은 가수 이선희의 매니지먼트를 시작으로 1986년 첫 발을 내딛었다. 초기의 공연 기획 노하우는 이선
스타하우스엔터테인먼트 장영훈 대표는 매니저로 활동하다가 2005년 연예기획사를 설립했다. 일반사업자로 시작한 기획사는 2006년 법인으로 바뀌었고, 2014년 현재 모두 9명의 소속배우를 가진 탄탄한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장 대표의 성장에는 이민호가 있다. 이에 장 대표는 “이민호는 ‘꽃보다 남자’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사실은 청소년 드라마를 통해
배우 이민호는 ‘꽃보다 남자’로 신예 한류스타로 떠올랐고 드라마 ‘상속자들’로 최고의 한류스타 반열에 올랐다. 중화권을 중심으로 이민호의 인기는 날로 치솟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일본 공연을 끝으로 10개월간의 아시아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2009년 ‘꽃보다 남자’로 시작된 이민호의 한류는 ‘상속자들’과 함께 2014년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 뮤지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의 존재는 한국 뮤지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뮤지컬의 개척자인 에이콤 인터내셔날의 윤호진 대표(66)다. 윤 대표로 인해 한국 뮤지컬의 역사가 본격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부터 했으니 40년이 넘었죠.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연극에 푹
‘국내 최초 대형 창작 뮤지컬’, ‘아시아 뮤지컬 최초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공연’, ‘국내 수출 1호 뮤지컬’, ‘뮤지컬 100만 관객 최초 돌파’….
1995년 탄생한 뮤지컬 ‘명성황후’가 세운 기록들이다. 뮤지컬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척박한 환경에서 한국 뮤지컬사에 길이 남을 최초의 기록이 가능했던 것은 윤호진이라는 인물과 그가 설립한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매니지먼트다. 잘하고 싶은 것도 매니지먼트다. 배우가 마음껏 잘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소통을 많이 하고자 한다. 매니저들과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판단하려면 소통이 잘 돼야 한다.”
젊고 온화하다. 연예인 못지않은 깔끔한 외모와 선한 웃음을 보이지만 조곤조곤한 말투에서 강단이 느껴진다. 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도산공원 근처 조용한 주택가 골목을 따라가면 2층짜리 자그마한 건물이 등장한다. 건물 1층에는 차분하고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커피숍을 지나 2층 계단을 올라가니 공효진의 매력적인 화보가 눈길을 끈다. 공유의 시크한 카리스마 면모를 자랑하는 사진도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스크린의 여제 전도연도 나이를 잊은 아름
“진화의 속도를 늦추지 않겠습니다.”
박해선(58) 박스미디어 대표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도시계획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KBS PD로 입사, 예능국장까지 지낸 그는 유능한 방송인이자 감성 넘치는 시인이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소라의 프로포즈’, ‘열린음악회’, ‘해피선데이-1박2일’, ‘해피투게더’, ‘미녀들의 수다’ 등 KBS의 굵직한
‘땡~’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밝은 오렌지색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제작기획사의 필수 요건, 창의력이 절로 샘솟을 것 같은 경쾌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서울 여의도 한복판, 우리나라 방송계의 심장에 박스미디어가 자리했다.
박스미디어는 2009년 9월 첫 발을 뗐다. ㈜휴앤락엔터테인먼트란 이름으로 설립돼 그해 10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
아이돌그룹 JYJ는 지난 2011년 국내 가수로는 처음으로 북미, 유럽, 남미를 포함한 월드투어 공연을 성황리에 진행했다. ‘겨울연가’, ‘대장금’으로 촉발된 한류(韓流)는 K-POP으로 확산됐고, JYJ의 행보는 아시아에 국한된 한류의 저변을 가시적으로 넓히는 성과를 이룩했다. JYJ로 대중 앞에 다시 선 박유천, 김준수, 김재중은 가수 활동 이외에도 드
씨제스엔터테인먼트(이하 씨제스)의 백창주 대표이사는 30대 후반의 젊은 CEO이다. 그는 2009년 불합리한 계약과 이익 분배로 힘들어하던 JYJ(박유천, 김준수, 김재중)를 만나 지금의 씨제스를 만들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백 대표의 ‘뚝심’은 기본을 향해 있었다.
백 대표는 “JYJ 멤버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