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문은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열었다. 그는 지난 4일 한 강연에서 “올해도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일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고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재계를 압박했다.
임금 결정이 기업에 있다 보니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대안으로 했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대기업까지 임금 인상 여론이 확산하리란 속내에서다. 온갖 경제활성화 대책에도 경기 침체가 계속되자 정부는 임금 인상에 기대를 걸고 있다. 소득이 늘면 소비도 늘어 꺼져가는 경기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다는 기대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가 현실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정부의 유동성 확대에도 경기에 온기가 돌지 않는 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국민이 연령대를 막론하고 소비지출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6~2013년 경상소득이 31.6% 증가했지만 소비지출은 22.0% 증가하는 데 그쳤다. 주류·담배(-1.6%), 통신(8.9%), 교육(9.3%) 분야의 소비증가율이 낮은 데 비해 보건(38.1%), 가정용품·가사서비스(34.4%), 주거·수도광열(31.2%)을 비롯해 개인연금보험지출(127.0%) 증가율이 높았다. 또 2006~2013년 조세·연금·사회보장 등의 비소비지출(36.9%)과 저축 및 부채감소를 위한 기타지출(47.2%) 증가로 전체 지출 중 소비지출에 쓸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들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단순히 임금을 올린다고 소득이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즉흥적이고 비전문적이다.
문제는 또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더라도 이미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는 대기업에 미치는 파장은 크지 않다. 반면 자영업자나 영세기업들은 바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과도한 임금 상승이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 수년에 걸쳐 최저임금이 인상된 아파트 경비원들은 대량 해고 사태를 겪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 말 최저임금이 80%에서 90%로 오르면서 전체 아파트 경비원 중 최소 10% 이상의 경비원이 해고된 것으로 추산된다. 임금이 높아지면 사람을 덜 쓰게 되는 게 당연하다.
중소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중소기업중앙회마저 임금 인상을 신중히 하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기중앙회는 “최저임금 인상은 결국 정부에서 의도하는 대로 소비 진작 혹은 취업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전체적인 고용 불안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그럼에도 중소기업들이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면 이를 감내할 만한 세제지원과 같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주장하고 있다.
한편, 재계 역시도 무조건적인 인상 반대보다는 정부와 머리를 맞대 우리 실정에 맞는 적절한 인상 수준을 논의해야 한다. 물건을 소비할 국민이 없다면 재계 또한 생존하기 어려울 것은 자명하다. 공멸의 길로 가기보다는 정부-재계가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혜안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