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국제유가 하락이 석유·화학제품 원가 인하와 소비자의 구매력 및 실질소득 증가로 이어져야 내수가 활성화되고 경제 선순환 구조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산업통상자원부는 예정보다 앞당겨 석유·LPG업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제품가격 인하를 당부했다. 산업부는 서울의 주유소 간 휘발유 가격이 ℓ당 800원 넘게 차이가 난다며 주유소별 가격 격차만큼 비싸게 받는 주유소들이 더 내려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석유업계는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유류세는 건들지도 않은 채 지난 2011년 때처럼 인위적인 가격 압박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더군다나 국제유가 급락의 직격탄을 맞아 영업실적 악화가 자명한 상황이라 부담은 더하다. 국내 정유 4사는 지난해 정유 부문에서만 2조원대의 손실이 예고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역시 지난해에 전년보다 부진한 실적이 예상되고 있다. 경영상황이 악화된 석유업계에 가격을 더 인하하라는 정부의 압박은 무리수에 가깝다.
기름 값을 낮춰 실질소득을 높이고 소비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옳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유가가 10% 하락하면 우리 경제 전체의 구매력은 약 9조5000억~10조4000억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기름값을 낮추라며 정부가 내세운 논리도 억지에 가깝다. 주유소는 지역별 임대료가 천차만별이다. 시내 중심에 있는 곳과 한적한 곳에 떨어져 있는 주유소의 기름값이 같을 수 없다. 비싼 기름을 넣으라고 강요하는 이도 없다. 소비자들은 얼마든지 공개된 정보를 통해 가격이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 이용할 수 있다.
정부는 경제를 살리려고 석유업계와 주유소의 팔을 비틀기보다는 기름 값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류세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 전국 평균 휘발유가격은 ℓ당 1594.9원이었고 이 가운데 890.9원이 세금이었다. 세율이 고정된 탓에 판매가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1월 49%에서 12월 말 56%까지 치솟았다.
최근 3년 연속 세수가 펑크난데 이어 올해도 세수 부족을 걱정하는 정부로서는 한해 20조원이 넘는 유류세 수입의 감소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에 유류세 인하와 관련해 정부는 세수 감소 우려를 내세워 “검토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선을 긋고 있다.
기름값을 시장 자율에 맡겨 놓을 때는 언제고 어려울 때마다 ‘협조’로 포장된 압박을 넣는 것은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갑질에 다름이 아니다. 제 것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의 희생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진심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면 정부부터 성의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