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은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타워 콘퍼런스센터에서 전체 회원사가 모인 가운데 제54회 정기총회를 열고 허 회장을 제35대 전경련 회장으로 선출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앞서 “할 생각이 없는데 주변에서 자꾸 물어보니까…”라며 고사의 뜻을 내비쳤던 허 회장은 강신호 전경련 명예회장(동아쏘시오그룹 회장)을 비롯한 재계 원로의 재추대에 다시 한 번 전경련 수장이란 총대를 멨다.
허 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연임된 것은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는 것과 더불어 그간 재계 현안을 두루 챙기는 등 회원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무난하게 전경련을 이끌어왔다는 평가에 있다. 달리 말하면 허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은 지난 4년간 원만하고 무난한 관계만을 유지해온 탓에 전경련은 재계 맏형이라는 본래의 정체성을 잃고 위상이 약화됐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경련 회장단 회의는 아예 비공개로 바뀌어 개회 여부를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고, 국가경제 현안을 논의하고 재계의 견해를 말하던 전경련의 위상은 어느 순간부터 ‘대기업 총수들의 소규모 친목모임’으로 전락한 듯하다.
지금 허 회장에게 필요한 것은 무섭게 변하는 시대에 걸맞게 전경련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전경련과 그 구성원인 대기업은 지난 50년간 국가경제 발전의 조언자이자 실물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대기업이 잘 돼야 내 살림도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이제는 없다. 지난 정부가 주창했던 ‘낙수 효과’는 그 한계를 드러냈으며 성장보다는 분배를 우선시하는 상황이 됐다. 최근에는 정치권의 포퓰리즘 때문에 양산된 복지정책 세원 마련을 위해 법인세 인상 여론이 비등하고, ‘땅콩 회항’ 등 대기업의 갑질로 비롯된 반기업 정서는 대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허 회장을 비롯해 전경련이 변해야 한다. 대기업이 주축이 돼 회원사의 이익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음에도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대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전경련이 달라지길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은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대·중소기업 상생과 노사정 사회협약 등에도 주도적으로 나서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등 시대와,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또 본래의 설립 취지에 걸맞게 포퓰리즘 탓에 대기업을 겨냥해 만들어지는 불편부당한 정책이나 사실과 다른 여론이 형성된다면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목소리도 강하게 내야 한다. 전경련 수장직이 어떤 자리였던가. 역대 전경련 회장들은 때로는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재계의 총리’라 불렸다. 전경련의 변화를 주도할 허 회장이 다시 한 번 신발끈을 동여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