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국 간 견해차...“지나치게 요건 까다로워” 반발
유럽연합(EU)이 천연가스 가격 안정을 위한 상한제 도입에 실패했다. 수개월째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상한제를 발동하는 임계값을 두고 회원국 간 격론이 벌어지면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EU 27개국 장관들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에너지이사회 특별회의에서 가스 가격 상한제 도입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회의를 마쳤다. 가스값 상한액을 놓고 각국 간 입장이 팽팽히 갈렸기 때문이다.
회의를 주재한 요제프 시켈라 체코 산업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논의가 꽤 가열됐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굉장히 다양한 견해가 있었다"면서 결론이 도출되지 못했음을 밝혔다.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가격은 1메가와트시(㎿h)당 275유로(약 38만 원)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 선물가격 기준 현 가스 선물가격이 120유로대다.
집행위 제안에 따르면 천연가스 1㎿h당 가격이 275유로를 넘는 상황이 2주간 지속되는 동시에 천연가스 가격이 액화천연가스(LNG)보다 1㎿h 기준으로 58유로 비싼 상황이 2주간 이어지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상한제를 발동할 수 있다.
이는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가 높은 독일과 네덜란드 등의 의견이 반영된 제안이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가격 상한제 도입으로 러시아를 비롯한 수출국들이 아시아와 같은 더 수익성이 좋은 시장으로 주요 공급처를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소 EU 15개 회원국이 실행 가능한 가격 상한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며, 이에 275유로 커트라인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가격 상한제 발동 요건이 까다로워 가격이 잠시 1㎿h당 300유로 넘게 치솟았던 8월에도 작동되지 못했을 것이란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코스타스 스크레카스 그리스 에너지부 장관은 상한제 발동 임계값인 1㎿h당 275유로에 대해 "실제로 상한선이 아니다"면서 "결과도 없이 귀중한 시간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와 스페인 에너지 장관들도 이 제안을 "농담"이라고 비판했다.
EU는 내달 13일 또 한 번 EU 에너지이사회 특별회의를 열 예정이다. 가스 가격 상한제가 집행위 계획대로 내년 1월부터 시행되려면 27개 회원국 전원 동의로 채택돼야 한다.
러시아는 대러 제재에 대한 보복 조치로 유럽 천연가스 수출을 대폭 줄였다. AP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의 전체 천연가스 수출에서 40%를 차지했던 유럽 수출은 약 7%로 대폭 줄어들었다. EU는 러시아 공급 감소분을 상쇄하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늘리고 있지만, 겨울철 난방 수요에 대한 우려는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5일 모하메드 시아 알수다니 이라크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가격 상한제 도입은 시장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