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전공 중 경제학은 문과 출신 학생들에게 쉽지 않은 학문이다. 수학적 사고가 뒷받침돼야 하며 특히 고교 시절 접해보지도 못한 벡터, 편미분, 다중회귀 등이 나오는 경제수학이나, 계량경제학의 난이도는 그야말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대학시절 계량경제학 시험을 치르기 한 달여 때 쯤 전이었다. 시험은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되는지, 시험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수업 종료 직전 몇몇 학생들이 질문했다. 교수님의 답변은 간단했다. “시험범위는 처음부터 시험 전주 강의 분까지야.”라는 말씀만 남기고 나가셨다. 적막과 함께 학생들의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때부터 시험에 대비하는 학생들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 유형은 먼저 여러 루트를 통해 정보활동을 펼친다. 소위 족보라고 하는 과년도 문제와 답안 수집, 주점에서 선배님과의 만남을 통한 시험 대비 전수, 심지어 교수님 성향 파악까지. 그야말로 우왕좌왕(右往左往),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이쯤 되면 정보 파악, 교재와 기출문제 수집까지 거의 20여 일이 소요된다. 시험까지 10일 정도를 공부를 하지만 결국 대부분은 A+와는 한참 거리가 먼 성적을 받는다.
두 번째 유형은 시험 발표 후부터 갑자기 잘 보이지 않는다. 가끔 공부했냐고 물어볼 기회가 생기면 잘 안된다고 하고 또 사라진다. 시험 후 이런 학생들의 성적을 보면 대부분 A+, A0와 같은 좋은 성적을 받는다. 도서관에서 차분히 공부한 유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4개월 여가 지났다. 이와 동시에 중대재해처벌법 대비 ‘해설서’, ‘매뉴얼’, ‘길라잡이’, ‘이해와 실무’ 등 지침서, 참고서가 쏟아져 나왔다. 여러 로펌에서는 컨설팅, 사고 발생 시 대응을 위한 조직도 신설됐다. 기업의 분위기는 어떨까. 아쉽게도 조직 실정에 맞게 차분히 안전보건경영방침을 세우고, 위험성을 평가한 후 대책을 세워 개선하는 등의 활동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두려움, 이로 인한 경영악화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은 듯하다. 물론 채용을 통한 안전보건조직 확대, 사고 발생 대비 법에 대한 대응과 전문가 자문 등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도 보인다. 그러나 왠지 안정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참고서와 전수할 전문가는 많은 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은 마치 앞서 얘기한 첫 번째 유형의 학생을 보는 듯하다.
이럴 때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본질은 바로 제1조 목적에 나와 있다. ‘이 법을 통해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사업장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이 그 목적이다. 다시 말해 처벌이 아닌 예방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은 예방에 방점을 두고 차근차근 안전보건경영을 실천하면 된다. 실천 도구로는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안전보건체계 구축지원, 안전보건 공생협력 프로그램, 위험성 평가 등을 활용하면 된다.
기업마다 환경은 다르지만 재해예방 노력을 통해 성과를 낸 사례를 공공기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안전관리 분야를 반영하는 등의 산재예방 시스템 구축으로 주요 공공기관 24곳에서는 지난해 최근 4년간 발주공사 산재사망사고 최저 기록을 달성했다. 민간부문에서도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내실 있게 추진한다면 두 번째 유형의 학생과 같은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한다. 바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의 미학이다. 이제 곧 여름이다. 당장 우리 현장의 온열질환, 질식재해부터 대비(對備)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