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 ‘이지머니’ 고수, 엔저 부채질
미일 금리차·경상수지 적자, 엔화 가치 하락 요인
달러·엔 환율이 28일 한때 달러당 125엔을 돌파했다. 엔화 가치는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으로 정책 방향을 수정한 반면 일본은행이 여전히 ‘이지머니(자금 조달이 쉬운 상태)’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영향이다. 잠정적 환율 방어선인 ‘구로다 라인(달러당 125엔)’을 터치한 만큼 정부 당국이 개입할지 주목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8일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한때 2.4% 올라 125.09엔까지 뛰었다. 엔화 가치는 2015년 8월 이후 약 7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엔화 가치는 이달 들어서만 7% 이상 빠졌다. 한 달 기준 2016년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특히 이날 엔화 가치는 일본은행이 ‘지정가 오퍼레이션’을 실시한다고 발표하면서 급락했다. 지정가 오퍼레이션은 금리를 특정 수준으로 지정해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공개시장조작을 말한다.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급등해 목표치를 크게 웃돌 경우 이를 떨어뜨리기 위해 실시된다. 일본은행은 10년 만기 국채를 0.25% 고정금리로 무제한 매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국채 수익률이 2016년 1월 이후 처음으로 0.245%를 기록하며 일본은행의 허용 수준인 0.25% 근처에서 움직이자 개입에 나선 것이다.
일본은행의 이 같은 움직임은 주요국 중앙은행들과 대조된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자처한 연준은 올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22년 만에 ‘빅스텝(0.5%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시사했다. 반면 일본은행은 17~18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정책금리를 연 마이너스(-) 0.1%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연준이 정책금리를 인상할 태세를 보이면서 일본과의 금리 차이가 더 확대할 것으로 전망되자 고금리를 좇는 투자자들이 엔을 매도하고 달러 매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엔화 가치 추락의 또 다른 배경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꼽힌다. 일본 제조업체들의 수출 규모가 줄고 에너지 수입이 늘면서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했다. 지난 1월 일본의 경상수지 적자는 1조1887억 엔으로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면 기업 등이 수입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엔화를 팔고 달러 등 외화를 사들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엔화 가치는 더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경상수지 적자가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이는 다시 경상수지 적자 폭을 키우는 악순환이 일어난다고 평가했다. 또한 엔저는 수입물가 상승을 초래해 기업과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제 관건은 정부가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시장에 개입해 환율 방어에 나설 것인지다. 일각에서는 달러·엔 환율이 125엔을 건드린 만큼 당국 개입 여지가 커졌다고 분석한다. 달러당 엔화 가치가 125엔 가까이 급락했던 2015년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엔저가 더 진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발언해 추가 하락을 막았다. 이후 외환시장은 달러당 125엔을 ‘구로다 라인’이라 부르며 일본은행의 환율 방어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