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가입은 우크라 숙원 사업
나토 가입 포기할 경우 유럽 안보 지형에도 영향
몰도바·조지아 옛소련 국가 긴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보름이 흘렀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3차에 걸친 협상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성사된 양측 외무장관 회담도 ‘빈손’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달라진 분위기도 감지된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요구인 중립국화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출구전략이 마련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는 실현될 수 있을까.
물과 기름처럼 첨예하게 대립하던 양측 협상에 묘한 기류 변화가 생기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쟁 중단 조건으로 내세웠던 사항 중에 탈(脫)나치화 언급이 사라졌다. 러시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중립국화와 함께 탈나치화를 요구해왔다.
러시아가 주장한 탈나치화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축출을 뜻했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권을 몰아내고 친러 정권을 세우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 발언에서 탈나치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젤렌스키 정권을 인정하는 대신 우크라이나를 중립국으로 만들어 나토 가입은 막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입장도 처음보다 유연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구걸하지 않겠다고 말해 협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8일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일 뜻이 없다고 이해한 뒤 이 문제에 대해 냉정해졌다”고 언급했다. 앞서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에 빠르게 가입하는 ‘특별 절차’는 없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의 요구대로 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중립국화를 선택할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우크라이나 측은 최근 안전이 보장된 중립국 지위는 나토 가입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분위기를 토대로 전문가들은 향후 양측 협상에서 ‘중립국화’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중립화가 확실한 안전 보장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 여당인 ‘국민의 종’은 8일 “우크라이나에 완전한 안보를 확보해줄 구체적 조약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바람대로 확실한 안전보장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과거 독일이 중립국 벨기에를 침공한 뒤 영국에 선전포고했던 1839년 런던조약의 선례가 있고, 1994년 소련 해체 후 우크라이나는 자국 내 영토에 남아 있던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과 영국, 러시아에 안전보장을 받았지만, 2022년 결국 러시아의 침공을 피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러시아의 요구인 중립화를 수용할 경우 유럽 안보 지형에도 큰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전면 포기할 경우 나토와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했던 조지아와 몰도바 등 옛 소련권 국가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몰도바와 조지아는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나토 회원국이 아니어서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도 나토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불안감이 커진 몰도바와 조지아도 서둘러 EU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와 텔레그래프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자국 안보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설명하는 도중 ‘몰도바 침공 계획’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지도를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접경국인 벨라루스는 핵무기 배치 길도 텄다. 러시아군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길목을 내어준 벨라루스는 최근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에서 핵무기 보유 금지 조항을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