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잇달아 미국 배터리 공장에 각각 수조 원을 쏟으며 투자 경쟁을 벌이는 배경에는 양사의 소송전이 있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비토) 행사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양사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앞세워 유리한 결론을 끌어내려는 모양새다.
LG에너지솔루션은 12일 2025년까지 미국 배터리 공장 등에 독자적으로 5조 원 이상 투자해 7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생산능력을 추가로 확보한다고 밝혔다.
생산능력은 현재 5GWh 규모의 미시간 공장에 더해 75GWh로 늘어난다.
특히, 기존 전기차와 ESS(에너지저장장치)용 파우치 배터리뿐만 아니라 최근 급성장하는 전기차용 원통형 배터리 분야도 신규로 진출한다.
회사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은 여러 자동차 업체들과 미국 내 비즈니스 확대를 논의하고 있어 한발 빠른 배터리 생산능력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미국 ESS 업체와 스타트업 전기차 업체들 대상의 수주 물량도 이미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현지에 올해 상반기까지 최소 2곳 이상의 후보지를 선정하기로 했다. 이후 사업 적합성 검토와 이사회 의결 과정 등을 거쳐 본격적인 투자를 집행할 방침이다.
이번 투자로 4000여 명의 직접 고용인원과 6000여 명의 공장 건설 기간 투입 인력 등 총 1만 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내다봤다.
이에 더해 GM과의 합작법인인 얼티엄 셀즈도 상반기 중에 두 번째 공장 투자를 결정한다. 이를 합치면 약 7조7000억 원을 투자해 총 140GWh의 생산능력을 추가로 확보할 전망이다.
얼티엄 셀즈는 현재 내년 가동을 목표로 오하이오주에 35GWh 규모의 1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GM은 올해 상반기 중에 두 번째 공장에 대한 구체적인 투자 규모와 부지를 확정할 예정이다.
해당 공장은 오하이오주에 있는 1공장과 비슷한 규모로, 차세대 첨단 기술을 적용한 배터리를 생산한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미국의 그린뉴딜 정책은 전기차 시장은 물론 ESS 시장의 성장을 한층 가속할 것”이라며 “배터리 생산능력을 선제 확보하고 R&D부터 생산에 이르기까지 현지화된 안정적인 공급망 체계를 구축하여 미국 전기차와 ESS 시장에서 최고의 파트너로서 미국 그린 뉴딜정책 성공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도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1, 2공장에 수조 원을 투자해왔다.
올해 초 SK이노베이션 이사회에서는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제2공장 건설 투자금으로 최대 10억 달러(1조870억 원)의 그린본드를 발행하는 채무보증에 대해 의결했다.
그린본드란 전기차나 신재생 에너지 등 친환경 분야의 자금지출을 위한 차입형태로, 사업의 친환경성을 인정받을 수 있고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확보 자금은 지난해 착공한 미국 배터리 제2 공장에 투입된다. 11.7GWh 규모로 2023년 양산이 목표다. 건설비는 총 15억 달러로 추산된다.
내년 1분기 양산 시작을 목표로 하는 9.8GWh 규모의 제1 공장을 더하면 총 21.5GWh의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렇게 양사가 미국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잇달아 발표하는 배경에는 배터리 소송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는 양사가 진행하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예비심결을 인용하며 10년간 미국 내 판매 금지 결정을 내렸다.
SK이노베이션은 이 결정으로 미국 배터리 공장을 비롯한 전기차 시장, 지역경제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수조 원을 투자한 배터리 공장이 멈춘다면 미국 내 수천 명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지고 자사와 공급계약을 맺은 전기차 업체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말 이런 내용을 담은 서류를 백악관에 제출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으로 한 달 안에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공익적인 차원을 강조하는 카드는 기존 SK이노베이션이 많이 썼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시한을 한 달여 앞두고 LG에너지솔루션도 투자 확대와 이에 따른 공익적 차원을 호소하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