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특구 지정에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취지에 들어맞게 이행되고 있다고 본다.”
김희천(55) 규제자유특구단장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하며 힘주어 한 말이다. 김 단장은 1, 2차 특구 중 가장 성과가 두드러진 곳으로 세종 자율주행실증 특구를 꼽았다.
김 단장은 지난해 5월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규제자유특구기획단을 1년 넘게 이끌어 온 인물이다. 기획재정부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외환제도과장, 대외경제총괄과장을 역임했고 한국은행에서는 금융시스템분석부장을 지냈다.
규제자유특구기획단은 15명의 중기부 인력에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5곳의 공무원 5명이 더해져 20명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각 지자체에서 파견된 인력 14명도 함께한다. 기획단은 작년 5월 한시 조직으로 출범해 올해 5월 활동 시한이 2년 연장됐다.
김 단장은 “규제자유특구 법에 특구 위원회를 두기로 돼 있기 때문에 2년 뒤에 또 연장된다고 봐야 한다”며 “규모가 더 커질지 줄어들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연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규제자유특구가 지역 인프라와 연계돼 지역 균형 발전을 이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전북이다. 전북은 2차에 친환경자동차, 3차에 탄소융복합 특구로 지정됐다. 친환경자동차 실증의 경우 군산형 일자리와 맞물려 시너지를 냈다는 설명이다. 군산형 일자리는 GM 등 대기업이 빠져나간 자리에 기술력을 갖춘 전기차 클러스터를 조성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 단장은 “전북이 3차에 탄소융복합 특구로도 지정돼 전주에 클러스터가 육성됐다”며 “2차 특구인 친환경자동차와 연계해 혁신 성장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단장은 실증이 말 그대로 ‘테스트’인 만큼 사업자의 고용과 매출이 확 늘어나는 데 방점을 찍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그는 “실증의 기본적인 개념은 정식 사업 전 테스트한다는 것”이라며 “특구에서 성과가 바로 나야 한다는 시각은 맞지 않다”고 부연했다.
본사 이전 문제도 사업자가 특구 사업을 주력으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강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특구 사업이 주력 사업이라면 본사를 옮기는 게 맞지만, 기존 영업활동도 계속해야 하면 지사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실증이 끝나고 해볼 만한 사업이라고 판단이 들면 그때 본사를 옮겨도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인력 채용 문제는 지역 대학에 관련 학과가 만들어지면서 해소되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 블록체인 특구의 경우 부산대가 올해 4월 블록체인 분야 융합보안대학원을 유치하면서 시너지를 냈다. 부산대는 4년간 국비와 시비 30억 원을 지원받아 블록체인 융합 보안 핵심기술 연구를 할 고급 인재를 매년 석사급으로 10명 이상 양성할 계획이다.
부산은 지난해 7월 1차 블록체인 특구로 선정되며 △물류 △관광 △공공안전 △금융 실증을 하는 데 더해 3차 특구에서 블록체인 관련 △부동산 집합투자 △데이터 거래 △의료 마이데이터 실증을 추가했다.
김 단장은 “3차에서 3개의 실증 사업이 추가됐고, 12개의 사업자가 선정됐지만, 신청은 44개 사업자가 몰렸다”며 “3차 실증 추가로 부산은 명실상부하게 블록체인 특구 지역으로 각인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단장은 개인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세종 자율주행실증 특구를 성과가 가장 두드러진 곳이라고 꼽았다. 김 단장은 “자율차에 대한 관심은 각 부처에서 매우 큰데 대부분 잠깐 해보고 마는 ‘쇼잉’”이라며 “세종은 실제 사람을 태워서 출퇴근하는 등 실증이 꽤 구체화됐다”고 설명했다.
세종은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팬텀AI를 실증 사업자로 유치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 연구원 출신 이찬규 대표와 테슬라 개발자 출신 조형기 대표가 공동 창업한 팬텀AI는 2016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됐고, 세종 특구에서 실증을 위해 올해 3월 한국지사를 만들었다. 김 씨는 “팬텀AI 관계자 말로는 미국에서는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기업이 인프라를 직접 깔아야 하는데 한국은 정부가 인프라 구축을 지원한다는 것이 큰 이점”이라고 전했다.
4차 특구 지정은 10월 말 ~ 11월 초로 예정됐다. 앞서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4차 특구 지정부터는 ‘탑 다운’ 방식이 적용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 단장은 “3차 규제자유특구에서 실증이 추가된 대전시 바이오메디컬 특구의 경우 탑다운 비슷한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2차 바이오메디컬 특구로 지정된 대전에 감염병 대응한 특구를 추가하는 방안을 중기부에서 먼저 아이디어를 냈다는 뜻이다.
14개 광역자치단체 중 3차에서 처음으로 지정된 충남도 ‘집중 컨설팅’의 결과였다고 김 단장은 설명했다. 그는 “4차 특구 지정에서 한두 개라도 탑다운 방식을 넣기 위해서 지자체별 인프라가 얼마나 깔렸는지, 규제가 뭔지 계속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2년에는 지방선거가 열린다. 특구 지정에는 지자체장의 의지가 중요한데, 지자체장이 바뀌면 실증을 2년 연장해도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 단장은 “애초 특구 선정 시 평가 요소에 지방비 매칭 계획, 전담 조직 구성 등 장기적인 지자체의 의지를 평가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정치적인 판단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정치적 견해가 개입돼 최소한 어떤 지역은 후하게 평가해 지정하고, 어떤 지역은 일부러 박하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