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글로벌 외환시장을 뒤흔든 최대 이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환율전쟁이었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미국 달러화 대비 중국 위안화 가치가 마지노선인 7위안 밑으로 떨어지는 ‘포치(破七)’ 현상이 11년 만에 나타나자 트럼프 정부는 8월 5일(현지시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하면서 환율전쟁의 시동을 걸었다.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것은 1994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후 미·중 양국이 1단계 무역합의를 위해 줄다리기 협상을 지속하면서 환율전쟁은 다소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러나 강(强)달러에 대해 여러 차례 불만을 표시해왔던 트럼프는 이달 초 다시 환율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바로 남미 양대 경제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대해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미국 농민과 근로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며 기습적으로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재개를 선언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다른 나라들이 항상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해 미국을 부당하게 착취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무역은 물론 환율 방면에서도 항상 전쟁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작했다는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전문가 대부분은 미국 경제의 강력한 성장세가 달러 강세를 견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ICE달러인덱스는 올해 들어 지금까지 약 1% 올랐다.
더 나아가 미국 경제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트럼프의 불평불만과 달리,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보인 통화가 적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트럼프발 환율전쟁의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올해 들어 11일까지 달러화에 대해 10.2% 올라 주요국 통화 가운데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캐나다 달러화가 3.5%로 그 뒤를 이었다. 그밖에 영국 파운드화(2.8%), 멕시코 페소화(2.8%), 인도네시아 루피아화(2.5%)가 강세를 보인 통화로 집계됐다.
올해 가장 부진한 성적을 거둔 통화로는 아르헨티나 페소화가 꼽히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국가부도 위기에 놓인 가운데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장의 불안이 극에 달했다. 그 결과 미국 달러화 대비 페소화 가치는 올해 60% 가까이 폭락했다. 한국 원화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달러화 대비 우리나라 원화 가치는 올해 들어 18일까지 약 5% 하락했다. 한국은 글로벌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세계적인 경기둔화 우려에 원화가 고전을 면치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내년 외환시장 전망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신흥국에 대해 비교적 밝은 전망을 내놨다. 블룸버그통신이 최근 57명의 글로벌 투자자와 트레이더, 투자전략가를 대상으로 투자 전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0%는 신흥국 통화가치가 내년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하락할 것이라는 응답률은 14%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올해 신흥국 통화 중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던 러시아 루블화를 내년에도 가장 선호할 통화로 꼽았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를 두 번째, 브라질 헤알화를 세 번째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원화는 9위에 올랐다.
골드만삭스의 재크 팬들 환율 부문 투자전략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위험자산이 강세를 보이면 미국 달러화는 떨어지기 마련”이라며 “현재 글로벌 증시가 새로운 고점을 찍고 있는 상황이어서 내년 달러화 가치가 소폭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다만 미국 경제는 내년에도 중국과 유럽보다 더 견실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달러화 가치 하락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