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와 이란의 분쟁이 적잖은 파문으로 이어졌다. 두 나라의 오래된 갈등은 같은 종교, 두 가지 종파에서 시작한다. 시작은 1979년 왕정체제 이란의 신정체제로 전환이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4일(현지시간) 중동의 양대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관계 악화를 우려, 양국 사이에 긴장을 확산시킬 수 있는 조치를 피할 것을 촉구했다.
유엔 대변인실에 따르면, 반기문 총장은 사우디·이란 외교장관들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중동과 다른 지역 이해관계에서 양국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앞서 사우디는 이란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밝히고 자국내 머물고 있는 이란 외교관의 철수를 지시했다.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본격적인 갈등의 시작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왕정체제였던 이란은 신정일치 국가로 전환하며 이슬람 혁명을 이끌었다. 이때부터 이란은 시아파(분파), 사우디는 수니파(정통파)를 추종하며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이듬해인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불거졌다. 사우디는 같은 수니파 이슬람인 이라크 정부를 지원하게 됐고, 시아파 이란은 사우디를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1987년에는 사우디 경찰력에 의해 이란 국민 수백명이 사망하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사우디 성지순례에 나섰던 이란 순례객이 경찰과 충돌한 것. 당시 이란 순례객 275명을 포함한 400여명이 숨졌다. 이에 항의하던 이란 국민이 자국내 사우디 대사관을 점거했고, 이 과정에서 사우디 외교관 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1988년 이듬해 서울올림픽에 사우디는 67번째 국가로 참가했다. 이란은 112번째 국가로 참가했다. 당시 사우디와 이란은 첫 번째 외교단절 상태였다.
1990년에는 외교관계가 회복되기도 했다. 이란 대통령이 신정체제 전환 이후 처음으로 사우디를 방문했다.
2000년대 들어 사우디와 이란은 각각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를 추종하며 중동지역에서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이어갔다. 예멘과 시리아 내전에서는 두 나라가 각각 자국이 추종하는 종파를 지원해 내전을 부추기기도 했다.
보이지 않던 힘겨루기는 2015년부터 점진적으로 수면 위에 드러났다. 양국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이달 들어 사우디가 시아파(이란) 지도자를 포함 47명을 집단 처형하면서 골은 깊어졌다.
이란 시위대는 곧바로 테헤란에 자리한 사우디 대사관에 불을 질렀다. 사우디가 곧바로 항의했지만 이란이 수용하지 않았고 양국은 외교 두 번째 외교단절 사태에 접어들었다.
반기문 총장은 지난 2일 성명에서 "사우디 정부가 시아파 유명 성직자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를 포함해 47명을 처형한 것에 대해 대단히 실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