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단체들이 곳곳에서 기념행사를 열고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표명하는 가운데 '세계 남성의 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의 정치·경제·사회적 업적을 범세계적으로 기리는 날이다.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이화림(李華林·1905~1999)은 평양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이춘실. 숭현소학교에서 육아교육을 공부하였고, 1919년 3·1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평양의 고등학교 학생들로 조직된 역사문학연구회의 일원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청진의 유아원에서 근무하면서 1927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성진·안주 등지에서 학생운동을 하였다.
1930년 3월,
정칠성(1897~1958)은 사회주의 여성운동가이다. 기생에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하였다고 하여 소위 ‘사상기생(思想妓生)’이라 불리기도 했다. 무산여성의 계급해방을 위한 투쟁에 평생을 바친 혁명가이다.
1897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녀는 8세라는 어린 나이에 기생이 되었다. 기명은 금죽(琴竹)이다. 경성 대정권번(大正券番) 소속의 기생이었던 그녀 인생의
함북 명천에서 출생한 허정숙(1902~1991)은 1818년 배화여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고베(神戶)신학교 관서학원에 잠시 다녔다. 1920년 중국 상하이의 외국어학교 유학 중 임원근, 박헌영 등 사회주의자와 교류하다 1924년 임원근과 결혼해 첫아들도 출산하였다.
변호사인 아버지 허헌을 존경하며 온갖 보살핌 속에 잘 자란 그였지만, 어려서부터 남녀 불평
주세죽(1901~1953)은 함흥의 사립 영생여학교 고등과에 다니던 중 31 운동에 참가해 한 달간 수감 생활을 했다. 그 후 병원에서 잠시 근무하다 1921년 4월 상하이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 여학교에서 1년 남짓 영어와 음악을 공부하면서 박헌영을 만나 사회주의 교육을 받았다. 이때 여운형의 도움으로 박헌영과 혼례도 치렀다.
그는 1924년 5월 정종
일제강점기(1910-1945년) 여성들의 독립운동은 비단 국내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만주, 노령, 상해, 하와이, 미국 등에서 여성들은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여성들의 독립운동은 대체로 군자금을 모금해서 전달하는 일, 여성교육활동에 나서는 일, 군사적 행동을 감행하는 의열 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 어떤 여성들이 어떻게 항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