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이란 나(I)보다 우리(we)가 좋은 사회가 아닐까. 로마 1000년 장수의 비밀은 ‘길’을 만드는 데 있었다. 로마는 돈이 생기면 성을 쌓지 않고 길을 닦았다고 한다. 로마제국은 8만km에 달하는 도로를 만들었다. 반면 길을 닦지 않고 문을 만든 도시국가는 오래가지 못했고, 만리장성을 쌓은 중국왕조도 3대를 가지 못했다. 아테네는 아테네인의 자식이 아닌 자는 아테네 시민이 될 수 없었다. 스파르타는 시민보다 노예가 더 많았다고 한다. 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라. 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고 했다.
길을 만들면 사람이 다니고, 사람이 다니면 대화와 거래가 일어난다. 길이 만나는 곳에 건물이 생기고, 거래가 일어날수록 부가가치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도시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플랫폼 이론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場)’을 플랫폼이라 한다. 사람이 만나면 재미와 흥분이 생긴다. 서울역의 플랫폼도 단순히 열차표를 파는 곳이 아니라 서비스와 흥분을 파는 곳이다. 성공한 플랫폼은 고객이 돈을 내는 곳이 아니라 고객이 흥분을 얻고 혜택을 만드는 곳이 되도록 노력한다. 흥분의 플랫폼이 많은 곳에 도시가 발전한다.
로마는 길을 닦아 사람들이 모이는 장,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래서 로마를 위해 땀을 흘리거나 피를 흘리면 출신과 스펙에 관계없이 누구나 로마시민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남이 우리가 될 수 있었다. 그랬더니 그리스인들이 로마에서 학원을 만들었고, 전쟁에서는 게르만인이 지켜주었고, 카르타고인들이 경제를 일으켜 주었다. 로마는 열린 국제화 플랫폼이 되었다.
이러한 개방성이 생태계별 사회 진화의 힘이 되었다, 로마는 지성에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게르만인보다,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못했지만 장수국가가 되었다. 열린 플랫폼 속에 학원 생태계, 전쟁 생태계, 경제 생태계가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로마는 정복민족이 아니라 보편제국을 만드는 플랫포머(총무)가 되고자 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로마의 해를 보고 있는가, 만리장성의 해를 보고 있는가.
진나라 시황제의 만리장성은 문을 만든 동물원 모델이고, 로마의 길은 열린 생태계 모델을 대표한다.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스펙에 매달려 문을 만들고 있지 않는지. 싸움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새해에는 길을 만들고 문을 열어 가치 창출의 생태계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과거의 스펙과의 전투가 아니라 미래 생태계를 위해 협력이 필요할 때이다.
길이 만나는 곳이 플랫폼이 되고 그곳에서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그러려면 우선 대한민국을 회장 중심국가에서 총무(플랫포머) 중심국가로 바꾸어야 한다. 총무는 명령하는 회장이 아니라 플랫폼 내 부족한 부분을 관찰하고 고쳐가는 기획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총무는 플랫폼 내 콘텐츠가 진화되고 있는가, 네트워크의 서비스의 질은 만족할 만한가, 터미널은 쾌적한가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관리해야 한다.
2002년 월드컵에서 플랫포머형 총무의 등장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히딩크는 단독 드리블 중심의 전투형 스펙축구를 패스와 협력이 있는 생태계 축구로 바꾸었다. 그 결과 그해 온 나라가 흥분에 휩싸였다. 갑오년 새해에 히딩크처럼 각 분야에서 플랫폼 사고에 불을 지르는 총무들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이들 총무가 영웅이 되는 그날 우리 사회는 또 다른 흥분이 있는 재밌는 생태계 대한민국으로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