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가렛 대처 영국 전 총리가 87세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다고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대처 총리의 대변인인 팀 벨 경은 이날 영국 스카이뉴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처 여사가 오늘 아침 뇌졸중으로 평온한 상태에서 눈을 감았다”면서 “우리는 그를 다시 볼수 없다. 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총리였으며 사람들의 삶을 변모시켰다”고 말했다.
대처가 처음 총리를 맡았던 1979년 영국 경제는 이른바 ‘영국병’으로 수렁에 빠졌다.
그는 11년 후 총리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세금을 낮추고 금융시장의 규제를 완화하는 등 일련의 개혁을 단행했다.
개혁은 그만큼 고통스러웠다. 영국의 실업자 수는 80년대 중반에 300만명을 넘어 정점에 이르렀고 한때 세계 제조업의 중심이었던 영국 북부의 많은 지역은 서비스업으로 국가 경제의 중심이 전환되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대처 전 총리의 개혁 정책을 통해 영국 런던은 세계 금융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포클랜드를 놓고 아르헨티나와 벌인 지난 1982년 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대처 전 총리의 주요 업적 중 하나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여성 총리였던 대처가 전쟁에 소극적으로 임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전쟁을 걸었으나 대처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영국을 승리로 이끌었다.
영국 왕실은 대처 전 총리의 사망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크게 슬퍼했다면서 유족에게 즉시 조의를 보냈다고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대처 전 총리의 장례식이 생전 본인의 유언에 따라 국장으로 치러지지는 않을 것이나 과거 여왕의 모친과 다이애니비 장례 때와 같은 수준으로 치러질 것이라고 밝혔다.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대처 전 총리의 과감한 사유화와 노조의 와해, 공공분야 지출 축소 등 ‘대처리즘’은 찬사를 받은 만큼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그러나 그의 과감한 리더십은 총선에서 대처가 세 번이나 승리한 비결이기도 했다는 평가다. 또 냉전 시대 그의 절친한 동료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공산주의와 구소련에 반대하는 강경 입장을 취해 냉전 종식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처 전 총리는 또 지난 1990년 유럽통합에 반대하다 당 지도부의 반발에 부딪혀 자진 사임했으며 결국 1991년 5월 정계를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