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먹거리 선정 대규모 투자 추진
M&Aㆍ등기임원 복귀여부도 관심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6월 7일 삼성 임원, 해외 주재원 등 200여 명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 모였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이들 앞에서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른바 삼성의 ‘신경영 선언’이다.
4일 재계에 따르면 7일은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위기의식을 갖지 못한 채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던 삼성의 체질 변화에 강력한 채찍으로 작용했다. 당시 눈앞의 양적 목표 달성에 급급했던 삼성은 신경영 선언으로 부가가치, 시너지, 장기적 경영전략 같은 질적 요인을 중요시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한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 계열사는 올해 신경영 선언 30주년을 맞이했지만, 과거 기념행사를 열거나 사내 방송 등을 통해 이날을 기념했던 것과 달리 올해 별다른 행사 없이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이재용 회장 체제로 전환한 데다 글로벌 경기 침체 등 위기 타파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에서는 신경영 선언 30주년을 맞아 취임 8개월 차에 접어든 이 회장이 ‘뉴삼성’ 비전을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과거 신경영 선언 때와 삼성의 입지, 세계 경제 상황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취임 후 뉴삼성을 구체적으로 선언한 적은 없지만, 그 근간은 기술 중심 경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취임 이전인 지난해 6월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기술”이라며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삼성은 이미 몇몇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삼성은 반도체, 바이오, 신성장 IT(정보기술) 등에 대한 총 450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혔다. 모두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주목받는 분야다.
이 회장은 뉴삼성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적극적인 해외 출장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이 즐비한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위한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는 행보로 해석된다.
삼성의 대규모 인수·합병(M&A) 발표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장의 취임 이후 업계에서는 삼성의 대규모 M&A 가능성을 점쳤으나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M&A는 2017년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 인수가 마지막이다. 사법 리스크 우려에도 책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 가능성도 최근 제기되고 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반도체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변화하는 데다 분명 반도체 반등 사이클이 오기 때문에 삼성은 기회를 보고 분명히 M&A에 나설 것”며 “특히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커질 수 있어 차량용 반도체 소재, 설계, 공정 등을 모두 갖춘 회사를 인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