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보툴리눔 톡신 균주 출처 민사소송의 여파가 톡신 업계 전체로 퍼지고 있다. 메디톡스가 1심에서 승소하면서 판결을 토대로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을 불법 취득해 상업화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추가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향후 추가 법적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민사 소송의 결과로 인해 국내에서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생산하고 있는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앞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1민사부는 10일 메디톡스가 대웅제약과 대웅을 상대로 낸 영업비밀 침해금지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웅제약에 메디톡스에게 400억 원 손해배상과 함께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를 포함한 보톡스 제제의 제조 및 판매를 중지하도록 했다. 또 균주 완제품과 반제품을 폐기할 것을 명했다.
메디톡스는 2017년 10월 보툴리눔 균주 및 제조공정을 도용당했다며 대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후 5년 4개월 만에 정당한 권리를 되찾게 됐다고 밝혔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이번 법원의 판결은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 등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과학적 증거로 내려진 명확한 판단”이라며 “이번 판결을 토대로 메디톡스의 정당한 권리보호 활동을 확장해 나가겠다.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을 불법 취득해 상업화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추가 법적 조치를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휴온스바이오파마와 휴젤 등은 13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소송은 자사와 무관한 분쟁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휴온스바이오파마는 유전자서열 분석 결과를 통해 자사의 보툴리눔 톡신 균주가 유전적 특성과 생화학적 특성을 확보한 독자적인 균주라고 주장했다.
메디톡스가 2016년 공개한 균주의 전체 유전자서열은 376만572개인 반면, 유온스바이오파마 균주의 전체 유전자서열은 384만8782개로 유전자적 분석 차이가 나며 2.11% 이상의 다른 유전자 서열을 지니고 있어 학문적으로도 동일균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휴젤도 20여 년이 넘는 기간동안 독자적인 연구 및 개발과정을 인정받았다며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개발시점과 경위, 제조공정 등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에서 보툴리눔 톡신 제제 사업을 하는 곳은 휴온스, 종근당, 파마리서치, 제테마 등이 있다. 이 중 메디톡스와 제테마의 경우만 균주 출처가 명확히 밝혀진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너무 소모적인 논쟁이었다고 아쉬워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기업 소송 시에 재산권을 지키는 데 몰두하는데, 이번 소송은 실익보다는 자존심을 두고 싸우는 데 치중돼 아쉬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결과를 두고 봤을 때 본인들이 잘못했음에도 무리하게 소송을 이어온 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며 “이는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의약업계에선 지식재산권 문제가 예민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습에 치중하기보다 극한 대치로 몰고 갔기 때문에 기업 윤리, 동업자 정신 등을 생각할 때 해당 회사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출처를 분명히 할 수 있는 법안은 발의된 상태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의원은 보툴리눔 톡신 균주 등 생물테러감염병병원체의 체계적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상 감염병의 진단이나 학술적 연구 등을 목적으로 생물테러에 이용될 수 있는 병원체를 보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질병관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관리·감독에 대한 근거는 없다.
법안이 통과되면 질병청은 제출된 병원체·균주를 토대로 유전자 정보 등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 허가를 받은 자가 속임수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허가를 받은 경우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톡신 업계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개정안 소급 여부에 대해 논의가 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질병관리청이 산업통상자원부, 국가정보원 등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국내 보툴리눔균 보유기관 24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관리실태 일제조사에 따르면 균 취급자 보안관리, 균주 불법취득 등 관리가 미흡한 사항이 다수 확인된 만큼, 법 시행 이전에 병원체를 취급한 기관 및 업체도 신설된 결격사유를 소급 적용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법안은 올해 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었으나 미뤄지면서 3월 법안소위를 노리고 있다. 최종윤 의원실 관계자는 “크게 쟁점이 있는 법안이 아니다”라며 “소위에서 논의만 되면 별 문제 없이 처리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다만,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법 시행 이전의 문제를 소급 적용하는 것은 쉬운 문제는 아니다. 소급 적용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대웅제약은 해당 판결 직후 즉각 강제집행정지 및 항소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2022년 서울중앙지검이 광범위한 수사 끝에 압수수색, 디지털 포렌식, 증인 진술 등을 종합한 결과,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기술이 대웅제약으로 유출됐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내린 무혐의 처분과 완전히 상반된 무리한 결론”이라며 “나보타 사업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웅제약 나보타의 미국·유럽 등 글로벌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파트너사 ‘에볼루스’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민사 판결은 주보 또는 누시바(국내 제품명 나보타)의 생산과 수출 또는 해외 판매애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에볼루스는 2021년 메디톡스와의 합의를 통해 대웅제약과 메디톡스 양사 간 한국 소송 결과에 관계없이 에볼루스의 지속적인 제조 및 상업화를 규정한 바 있다. 합의 내용에 따르면 이번 민사 1심 결과와 상관없이 대웅제약이 나보타를 제조하여 에볼루스에 수출할 수 있는 권리와 에볼루스가 제품을 계속 상업화 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