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42곳으로 약진하는 동안 시총·수익성 떨어져
설비, 연구·개발 투자는 많지만 법인세 부담 지나쳐
“세 부담 높아 경쟁력 악화…공세적 지원 정책 필요”
글로벌 시가총액 100대 반도체 기업 중 우리 기업은 단 3곳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반도체 기업은 시총 순위는 물론 수익성도 뒷걸음질 치고 있어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24일 ‘2022년 1~9월 평균 시가총액 기준 상위 100대 반도체 기업’의 경영지표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100대 기업 중 칩4(CHIP4, 한국·미국·대만·일본)에 속한 기업은 48곳으로 절반에 육박했으나 우리 기업은 3곳에 불과해 미국(28개사), 대만(10개사), 일본(7개사)에 크게 뒤처졌다. 시총 100대 기업에 속한 우리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SK스퀘어였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글로벌 시총 순위는 최근 몇 년간 모두 떨어졌다. 2018년 이후 삼성전자는 2계단, SK하이닉스는 4계단 하락했다. 2018년 글로벌 반도체 시총 1위였던 삼성전자는 TSMC(대만), 엔비디아(미국)에 1·2위를 내줬다. 같은 해 SK하이닉스는 10위에서 14위까지 떨어졌다. SK스퀘어는 2021년 80위에서 올해 10월 100위까지 추락했다.
우리 기업들은 칩4 국가 기업 중 유일하게 수익성이 하락하기도 했다. 한국 기업의 매출액 순이익률은 2018년 16.3%에서 지난해 14.4%로 1.9%p 줄어들었다. 반면 미국(3.9%p), 일본(2.0%p), 대만(1.1%p) 등은 수익성이 커졌다. 이에 전경련은 반도체가 한국 수출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대표산업임에도 글로벌 동종 업계에서 시총 순위도 밀리고 수익성도 저하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쟁력은 낮아지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의 영업현금흐름 대비 설비투자는 2021년 63.1%로 칩4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전경련은 “한국, 대만처럼 반도체 생산에 강점을 가진 부문은 매년 대규모, 최신 설비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생산단가를 낮추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한국기업들은 매년 수십조 원을 설비투자에 쏟아붓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는 2021년 8.3%로 칩4 국가 중 가장 낮았다. 전경련은 R&D 투자 비율은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에서 높고 한국·대만의 메모리·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처럼 생산공정이 중요하면 낮은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들은 D램·낸드 등 기존사업 기술개발 및 인공지능(AI), 차세대 메모리 등 미래기술 확보를 위해 R&D 투자를 2018년 7.1%에서 지난해 8.3%로 늘려온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기업이 고전하는 동안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시총 100대 기업에 속한 중국 기업은 42개사로 칩4에 속하는 48개사를 턱밑까지 따라잡았다. 전경련은 “중국 기업들은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거대한 내수시장과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중국 기업의 2018년 대비 2021년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26.7%로 중국 외 기업 8.2%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성장성을 보였다. 중국 기업의 지난해 영업현금흐름 대비 설비투자 비율 역시 124.7%로 중국 외 기업 47.7%를 크게 앞질렀다.
시총 100대 기업에 속한 중국 기업으로는 SMIC(28위, 파운드리 세계 5위), TCL중환신능원(31위, 태양광·반도체 소재), 칭광궈신(32위, IC칩 설계·개발), 웨이얼반도체(38위, 팹리스 세계 9위) 등 다양한 분야의 반도체 기업들이 포진해 있었다.
우리 기업의 법인세 부담률은 지난해 26.9%로 칩4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13.0%), 대만(12.1%)의 약 2배 수준이다. 한국의 법인세 부담률은 2018년 25.5%로 4개국 중 이미 가장 높았으나 ‘법인세 증세 기조’의 영향으로 3년 사이 1.4%p 더 늘었다.
이와 달리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법인세율 인하, 투자촉진책 등 감세 정책의 결과로 법인세 부담률이 같은 기간 3.4% 줄어들었다. 대만의 법인세 부담률은 4개국 중 4년 연속 가장 낮아 조세 환경이 가장 유리한 것으로 분석됐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시총 순위 하락과 수익성 약화에도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매년 대규모 설비투자와 R&D 투자를 단행하며 글로벌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기업들은 경쟁국에 비해 큰 세 부담을 지고 있는데, 이 효과가 누적되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요국은 반도체 산업 패권 장악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투자유치와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우리나라도 반도체 산업 우위를 유지하려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미국처럼 25%로 높이는 등 공세적인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