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가족이 점심 외식(Lunch) 한번 하려면 10만 원이 들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나들이용 옷(Clothes)을 구매하려고 해도 옷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집밥(Dining)으로 저녁 끼니를 때우려고 해도 식자재 가격 상승에 놀라긴 마찬가지. 이른바 'L(Lunch)·C(Cloth)·D(Dining)' 인플레이션 공포가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중학생 아들 2명을 키우는 맞벌이 부부 김 모 씨(45)는 주말을 맞아 백화점에 들러 점심을 먹고, 아이들 옷을 구입하기로 했다. 푹푹 찌는 찜통 더위에 냉면으로 메뉴를 정했고, 중학생 아들한테는 요즘 유행이라는 테니스 피케셔츠를 사주기로 했다. 하지만 푸드코트에 입점한 유명 냉면집의 메뉴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냉면 한 그릇에 1만5000원, 돼지수육 한 접시는 2만9000원으로 4인 가족 점심 값만 거의 10만 원에 육박했다.
지난달 외식물가는 전년대비 8.0% 급등해 1992년 10월 이후 29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2분기 밀가루와 식용유 값은 전년동기보다 각각 31.3%, 23.9% 뛰며 외식비용 상승을 부채질했다. 이 영향으로 서울 지역 냉면 값은 4월 처음으로 1만 원을 넘긴 후에도 계속 올라 6월에는 1만269원을 찍었다. 1년 만에 8.1% 뛰었지만 다른 메뉴보다 인상 폭은 덜한 편이다. 1년 동안 자장면 값은 16.3%, 칼국수는 10.8% 비싸졌다. 김밥과 김치찌개 백반도 각각 7.9%씩 올랐다.
백화점 스포츠 매장에 들러 아들 옷을 골라주던 김 씨는 또 한번 놀랐다. 유명 스포츠웨어 브랜드에서 반팔 피케셔츠 2개를 10만 원 정도로 생각했는데, 2벌에 15만 원이 들었다. 백화점 점원은 “겨울 신상품 가격은 더 올라요”라고 귀띔한다. 의류 원자재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면(코튼) 가격 지수는 지난 5월 216.05로 2년 전인 2020년 5월(108.18)보다 2배(99.7%)나 뛰었다.
올해 초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인 자라가 일부 제품 가격을 5% 가량 올리더니 H&M도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도 10% 가량, 아식스도 15% 내외로 비싸졌다. 유니클로 역시 지난달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했고, 국내 브랜드로는 코오롱스포츠가 신상품 가격 인상을 예고해 의류 도미노 인상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 씨 가족은 예상보다 과도한 지출에 저녁 식사는 집에서 해결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투데이가 4인 가구 한끼 상차림 비용(소비자원 참가격 기준)을 가정해 계산해 보니 1회 비용은 1년 전보다 약 20% 높아졌다. 메뉴는 된장찌개와 제육볶음, 시금치나물이며 후식으로 바나나를 정했다. 1년 전보다 애호박은 58.2%, 시금치는 63.2%, 삼겹살은 10.7%, 바나나는 12.3% 오르는 등 기본 재료값만 한 끼에 3만 2841원이 들어 1년 전(2만 7554원)보다 5000원 가량 뛰었다. 하루 두끼만 제대로 된 밥상을 차릴 경우 하루 6만5000원, 한달 밥상 차림에만 200만 원이 드는 셈이다. 김 씨는 “살벌한 물가 때문에 가족 식비만 생각해도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며 뼈있는 농담을 했다.
소비자들의 물가 걱정이 커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L·C·D 물가가 당분간 계속 오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고점을 찍은 3~6월에 구입한 물량이 국내에 들어오는 올 3분기 곡물 수입가가 2분기보다 14% 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겨울옷에 주로 사용되는 오리털과 거위털 가격이 지난해 25~50%씩 올랐다는 점도 올 가을·겨울(FW) 시즌 의류의 가격 인상을 압박한다.
여기에 치솟는 기름 값으로 전기 및 가스 요금 상승도 생활물가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본 식재료와 원부자재 상승을 비롯해 전기와 가스 등 생활에 꼭 필요한 대부분의 재화 가격이 오르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가계 불안감이 굉장히 커진 상태”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