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의사의 조력에 의한 존엄사를 인정하는 일명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된 것에 대해 의료계가 자살을 합법화하는 것이라며 반대의 뜻을 밝혔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21일 입장문을 통해 최근 의사조력자살 허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 발의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말기 환자가 의사 도움으로 자살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학회 측은 존엄한 생애말기 돌봄을 위한 정책 마련이 우선이라며, 국회와 정부과 조력존엄사법 이전에 돌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관심과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앞서 국회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지난 15일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삶을 중단할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조력존엄사법)’을 대표 발의했다.
‘조력존엄사’는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가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 하는 것이다. 안 의원은 조력존엄사법 핵심은 삶의 마무리 시점을 말기환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말기환자 본인이 희망할 경우 의사 조력을 받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종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법안 발의 이유를 제시했다.
법안에는 조력존엄사대상자를 △말기 환자에 해당할 것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을 것 △신청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조력존엄사를 희망하고 있을 것 등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로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조력존엄사를 희망하는 사람이 말기환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및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첨부해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서면으로 대상자 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심사위)는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으로 위원장 1명(복지부 장관)을 포함 15명 이내 위원으로 구성하고, 심사위원은 관계 기관 소속 고위 공무원, 의료인, 윤리 분야 전문가 또는 심리 분야 전문가 등 조력존엄사 관련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맡게 된다. 또한 법안에 따르면 조력존엄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심사위에서 대상자로 결정된 날부터 1개월이 경과하고, 대상자 본인이 담당의사 및 전문의 2인에게 조력존엄사를 희망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 한해 조력존엄사를 이행할 수 있다.
조력존엄사를 도운 담당의사에 대해서는 형법 상 자살방조죄의 적용을 배제하도록 했고,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근무하거나 했던 사람이 업무상 알게 된 정보를 유출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하지만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학회 측은 “국회와 정부가 약속했던 존엄한 돌봄의 근간이 되는 호스피스 인프라에 대한 투자, 비암성질환의 말기 돌봄에 관한 관심, 돌봄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제도의 정비 등은 제자리걸음 그 이상이 아닌 현실”이라며 “지난 2년 코로나19로 말기환자를 돌보는 의료현장은 더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학회 측은 “이러한 시점에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을 통한 조력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며 “법안 요지는 의사조력을 통한 자살이라는 용어를 조력존엄사라는 용어로 순화시켰을 뿐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살하는 것을 합법화한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이후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지원과 인프라 확충의 책임이 있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을 지원하고 감시하는 데 무관심했던 국회가 다시 한번 의지없는 약속을 전제로 자살을 조장하는 법안을 냈다고 덧붙였다.
이에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존엄한 돌봄이 선행돼야 한다”며 국회가 조력 존엄사 논의 이전에 존엄한 돌봄의 유지에 필수적인 △호스피스 시설과 인력의 확충 △치매 등 다양한 만성질환 말기환자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 기회 확대 △임종실 설치 의무화 △촘촘한 사회복지제도의 뒷받침에 대한 실질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