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노동계는 환영의 입장을 내놓은데 비해 기업들은 ‘고용 불안을 불러올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개별 사업장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시행 방법 등을 두고 노사 간 재논의·협상 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임금피크제의 적정성을 둘러싸고 노사간 대립이 심화되고 임금피크제 자체가 축소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단 노동계에서는 일부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대법원 판례가 나온 이후 논평에서 "지금 같은 방식의 임금피크제는 지속돼서는 안 된다"며 "대법원 판결은 당연한 결과로,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 판결을 계기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현장의 부당한 임금피크제가 폐지되기를 바란다"며 "한국노총은 현장 지침 등을 통해 노조 차원에서 임금피크제 무효화 및 폐지에 나서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대법원이 이번 사건의 임금피크제 무효 판단 근거로 '임금 삭감에 대응하는 대상 조치의 미흡',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을 이유로 차별' 등을 제시한 데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대법원이 언급한 요소가 해소되면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대법원 역시 이날 판결 후 "임금피크제의 효력은 개별 사안별로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경제단체를 필두로한 재계는 ‘중장년 고용불안이 심화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며 우려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대법원 판결 이후 입장문을 통해 “임금피크제는 기존의 연공급제(호봉제) 하에선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이를 무효화하면 청년일자리, 중장년 고용불안 등 정년연장의 부작용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논평을 내고 “급속한 고령화에 대응해 고용 안정을 위해 노사 간 합의 하에 도입된 임금피크제가 연령에 따른 차별로 위법하다고 판단한 이번 판결은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고 고용 불안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도 논평을 통해 "정부의 적극적인 권고로 제도를 도입했던 기업 현장에선 앞으로 임금 소송 남발로 인한 노사 간 갈등이 격화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선 현장에서는 대규모 소송과 임금 차액 지불 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들로서는 만약 임금피크제가 축소될 경우 희망퇴직 등이 줄면서 정년을 채우게 되고, 이에 따라 임금 확대 등에 따른 경영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우려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 기업의 경우 임금피크제 대상자만 500명 전후로 파악되는데 이들의 연봉이 임금피크제 전 1억 원이라고 가정하면 150억 원(3000만 원x500명)에 달하는 임금 차액을 돌려줘야 한다”면서 “다만 이번 사례가 연구기관에서 발생한 사안인 만큼 다른 기업들도 적용될 지는 의문이지만 줄소송 사태로 기업 경영부담이 가중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판례만 놓고 보면 정년연장 없이 임금피크제만 도입된 곳이 문제가 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면서 “각 사마다 고용계약과 정관이 달라 다양한 케이스들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정확한 정부의 가이드나 지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