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합의로 도입된 임금피크제를 무효로 판단한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도입목적이 정당하고 필요했는지, 임금을 삭감한 만큼 업무량이 줄었는지 등 개별 기업의 상황에 따라 임금피크제 효력 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A 씨가 전자부품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전자부품연구원은 노조 합의를 거쳐 정년을 61세로 유지하면서 55세 이상 근로자들의 임금을 감액하는 내용의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로 인해 낮은 임금을 받게 된 A 씨는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상 연령차별금지 규정을 위반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냈다.
고령자고용법은 사업주가 임금 등을 지급할 때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1·2심은 전자부품연구원이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에 어긋나 무효라고 보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결론 내렸다.
먼저 고령자고용법이 강제성을 갖는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규정 내용, 연령차별을 당한 사람은 국가인권위에 진정할 수 있고, 구제조치와 시정명령이 내려질 수 있으며, 시정명령 불이행 시 과태료가 부과되는 점, 고용 영역에서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헌법상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는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업주가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경우 무효인지 여부는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와 적정성,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경우 도입 목적인 ‘인건비 부담 완화 등 경영성과 제고’가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임금피크제로 A 씨가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고, 업무 감축 등 적정한 대상조치가 강구되지 않는 등 연령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판결”이라며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 진행 중인 사건의 효력 인정 여부는 판단기준에 따라 개별 사안별로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