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급등한 원자잿값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물건을 팔수록 손해를 보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기업의 98%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조기업 304개사를 대상으로 벌인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기업영향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75.6%가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제품 생산단가가 크게 증가했다'고 답했다. 반면 '조금 증가했다'거나 '거의 영향 없다'는 응답은 각각 21.4%와 3.0%에 그쳤다.
영업이익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응답 기업의 66.8%는 최근 상황이 계속되면 올해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제품을 팔수록 손해가 발생해 영업적자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31.2%에 달했다. 조사대상 기업의 대부분인 98%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기업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한 것이다.
실제로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 가격은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9개월간 472%가량 폭등했다. 반도체 핵심원료인 네온과 크립톤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올해 초 각각 260.9%, 105.1%씩 급등했다. 대표적인 원자재 가격 지수인 S&P 골드만삭스 원자재지수(GSCI)는 1분기에 29%가 올라 1990년 이후 분기 기준 최대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급등한 원자재 가격을 제품가격에 반영하면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기업의 고민도 깊어지는 상황이다.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인한 부담을 제품가격에 반영했는지를 묻자 '충분히 반영했다'고 답한 기업은 15.8%에 불과했다. '일부만 반영했다'(50.5%)거나 '조만간 반영할 계획'(23.5%)이라고 응답한 기업이 74.0%로 다수를 차지했다. '현재로써는 반영할 계획이 없다'는 기업도 10.2%나 됐다.
원자재 부담을 제품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기업의 42.7%는 매출감소 우려를 이유로 꼽았다. 거래처와의 사전계약으로 당장 가격을 올리기 어렵다거나, 미리 확보한 원자재 재고에 여유가 있어 아직 올리지 않고 있다는 응답도 각각 32.5%와 16.5%를 차지했다.
원자재 가격이 지금처럼 높은 수준을 지속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묻자 ‘제품가격 인상’(78.9%)을 선택한 기업이 가장 많았다. 그간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발생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제품가격을 어느 정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한, 조사대상 기업의 절반 이상은 ‘전반적인 비용 절감’(50.3%)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제품가격에 모두 반영하기 어려워서 긴축경영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원자재 대체 검토‘(23.0%), ’계획 없음’(4.3%), ‘판매(납품) 중단‘(2.6%)이 뒤를 이었다.
기업들은 정부에 바라는 대책으로 ’전반적인 물가 안정화’(39.5%)를 우선으로 꼽았다. 원자재 외에도 에너지 가격, 공공요금 등 전반적인 물가가 상승하는 데다 변동 폭도 커지다 보니 기업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이어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 지원‘(36.5%), ’납품단가 합리적 조정 지원‘(9.9%), ’관세 인하 등 비용 부담 완화‘(9.5%), ’운영자금 지원‘(4.6%) 등을 선택한 예도 있었다.
전인식 대한상의 산업정책실장은 “기업들은 당장 원자재 가격 인상 부담을 어떻게 줄이느냐는 고민도 크지만, 점차 현실화하고 있는 복합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도 원자재 가격문제뿐만 아니라 임금, 금리, 물류비 등 기업의 비용부담 요인을 전반적으로 점검해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