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사용료 지급을 놓고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법정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외 전문가가 넷플릭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넷플릭스가 말하는 '빌앤킵(Bill and Keep)' 원칙을 망 사업자와 콘텐츠 제공자 사이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24일 로슬린 레이튼 박사는 한국 기자들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대규모의 동영상 트래픽을 유발하고 있지만 네트워크 이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문제"라며 "한국 2300만 인터넷 가입자가 넷플릭스 이용자 500만 명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레이튼 박사는 덴마크 통신 컨설팅 기업 '스트랜드 컨설트' 수석 부사장을 맡고 있다. 또한 미국 경제지 포브스(Forbes)의 시니어 칼럼니스트로서 지난달 '2300만 한국인, 500만 넷플릭스 가입자를 위해 더 많은 요금 낸다'는 내용의 칼럼도 게재한 바 있다.
레이튼 박사는 넷플릭스가 주장하는 빌앤킵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빌앤킵 방식은 상호연결 방법론 중 하나"라며 "빌앤킵의 선결조건은 양 측이 상호 유사한 수준의 트래픽을 교환하고, 빌앤킵 사용에 합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넷플릭스는 초고용량 트래픽을 SK브로드밴드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하지만 SK브로드밴드는 동일한 트래픽을 넷플릭스에 보내지 않는다"며 양 측이 주고받는 트래픽의 양의 차이가 큰 만큼 이 원칙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넷플릭스가 주장하는 자체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오픈커넥트(OCA)' 역시 "자사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레이튼 박사는 "미국에서 진행한 사례 연구 결과 OCA를 설치한 뒤 많은 망 비용이 발생했고 트래픽도 늘었다"며 "OCA를 설치하면 SK브로드밴드는 네트워크를 유지보수하기 힘들어지고, 망 투자 시 필요한 사용료를 받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튼 박사는 이번 소송의 주요 쟁점인 '콘텐츠 전송 의무' 역시 넷플릭스에 있다고 봤다. 그는 "콘텐츠 통제의 주체는 넷플릭스"라며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의 전송 품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며, SK브로드밴드는 스트리밍을 용이하게 하는 조력자 역할"이라고 말했다.
망 이용대가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에 관해서는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네트워크 이용 의무를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망 사용료를 법제화하면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의 트래픽 혁신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같은 레이튼 박사의 주장에 넷플릭스도 재반박에 나섰다. 넷플릭스 측은 "콘텐츠 제공자와 인터넷 사업자가 연결할 때도 마찬가지로 각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인터넷 세계의 질서"라고 반박했다. 빌앤킵 원칙을 넷플릭스-SK브로드밴드 사이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넷플릭스 측은 "넷플릭스는 현재 전 세계 7200개가 넘는 인터넷 사업자와 연결돼 있으며 이중 어느 사업자에게도 SK브로드밴드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고 있지 않다"며 "넷플릭스와 직접 연결, 그리고 OCA 설치 등을 통해 상호간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OCA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자신과 가까운 곳의 OCA에 직접 연결하고 넷플릭스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OCA를 망 내에 분산 설치함으로써, 트래픽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