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의류 제작하면 디자인과 봉제 정도를 떠올리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디자인, 패턴, 샘플 제작, 봉제, 검수 등. 제작 과정이 평균 30단계에 이른다. 여기에 물류 고민과 좋은 공장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하는 노력은 덤이다.
디자이너와 봉제ㆍ의류 공장을 연결해주는 의류 제작 B2B 플랫폼 ‘오슬’은 이런 복잡한 의류 제작 과정을 원스톱으로 진행하는 생산 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실시간으로 견적을 받아 원하는 공장을 선택할 수 있고, 플랫폼 내에서 직접 공장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비대면 전자 계약은 물론, KOTITI(섬유시험연구기관)와 협업해 원단 검사도 진행한다.
지난달 29일 오슬 플랫폼을 운영하는 위아더 조형일 대표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위아더 본사에서 만났다. 조 대표는 “의류 사업을 하다 보면 세세하게 신경 쓸 것들이 많은데 오슬은 B2B 고객들이 소소한 것들 대신 오직 디자인과 브랜딩만 신경 쓸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편리한 제작 과정은 물론, 국내 시장 트렌드에 발맞춰 나갈 수 있는 ‘반응형 생산 시스템’도 강점이다. 여러 종류의 품목을 소량으로 생산하고 시중에 뿌린 뒤, 고객의 반응을 보고 잘 팔리는 제품을 다시 빠르게 대량 제작해 입고하는 방식이다. 소비자의 반응에 맞춰 트렌드 대응이 가능해 재고 관리가 용이하다.
“보통 패션계에선 6개월 전 상품 준비에 들어가는데 우리는 12월에 겨울 제품을 생산한다. 트렌드가 워낙 빨라 제품을 내놓고 2주면 소비자 반응을 파악할 수 있어 여기에 맞춰 제품을 공급한다. 재고 리스크를 훨씬 줄일 수 있고, 요즘 화두인 ESG 측면에서 환경에 도움이 된다.”
2019년 12월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오슬은 지난달 기준 B2B 디자이너 고객이 9000명을 넘어섰다. 1인 사장님과 쇼핑몰은 물론 신성통상과 ENC월드 같은 내셔널 브랜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도 주요 고객사다. 와디즈에서 프로젝트 제작자가 펀딩에 성공하면, 오슬이 생산해서 납품하는 방식이다.
국내 의류 생산은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제작 과정도 빠르고 관리 효율성도 높다. 다만 중국이나 동남아 등 해외에서 대량 생산하는 것보다는 1벌당 가격이 높다. 오 대표는 앞으로 IT기술을 바탕으로 공정을 효율화해 단가를 낮춰나갈 계획이다. 이미 3D 모델링을 활용해 샘플 제작 횟수를 줄이는 등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조 대표는 “서울에서 제작 단가가 100이라면 지방이 90~80, 중국이 70, 동남아가 50인데, 일단은 중국 단가를 잡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11년간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몸담으며 제조 분야의 성장 필요성을 절감해 창업에 도전했다. 이탈리아가 튼튼한 제조업과 장인 문화를 바탕으로 패션의 중심이 된 것처럼 한국도 의류 제조업이 성장해야 한다고 느꼈다. 공동 창업자로 개발자 출신의 강상구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함께했다.
그는 “유통이나 판매 쪽에서는 디자이너들이 계속 유입되고 큰 플랫폼이 많이 성장하는 반면, 제조 부분은 여전히 낙후돼있고 고령화 현상이 심각하다”며 “그들을 디자이너와 이어 업계 상생과 분배의 역할을 해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2019년 4월 설립된 위아더는 지난해부터 주요 매출을 내기 시작했다. 조 대표는 올해 예상 매출을 약 100억 원으로 내다봤다. 1월부터 시작되는 계약 매출만으로 벌써 20~30억 원 정도를 달성했다.
조 대표는 “그동안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목표를 찬찬히 이뤄왔다면, 내년에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는 고객이 실시간 생산 현황을 볼 수 있도록 VR, IoT(사물인터넷)를 활용하는 솔루션을 주요 계획으로 삼고 있다. 패션 전문지와 협업해 플랫폼 내에서 산업계 소식도 전달하는 등 콘텐츠도 키울 전망이다.
회사가 커진 만큼 조직 문화도 본격적으로 다듬어나갈 계획이다. 조 대표는 고정 관념 없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재상을 추구한다. 인사권과 결정권은 각 파트 부서장이 갖는다. 대표 본인이 큰 그림이나 비전을 제시하지만, 구체적인 결정은 전문가들이 하는 게 맞다는 판단에서다.
그가 그리는 그림은 오슬 B2B 고객을 넘어 일반 소비자에게도 인정받는 제조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조 대표는 “어떤 의류 브랜드를 가든 제조원이 오슬이면 소비자들이 ‘아, 잘 꿰맸겠네’라고 이야기하는 제조 브랜드가 되고 싶다. 제조 브랜드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