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를 만들어 협력업체 직원 7000여 명을 채용할 계획이던 현대제철이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일부 직원들이 자회사 대신 현대제철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면서다. 노ㆍ노 갈등으로 제 2의 인천국제공항(인국공)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는 24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통제센터 건물을 점거하고 있다. 이들은 현대제철 협력업체에 소속된 '정규직' 직원이다.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100여 명은 전날 오후 5시 30분께 기습적으로 이곳을 점거하며 현대제철의 직접 고용을 촉구했다. 점거를 막는 직원들을 건물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보안업체 직원 등 총 11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제센터는 제철소 생산 운영, 안전, 물류 관련 부서가 자리한 곳이다. 노조의 점거로 현대제철은 경찰에 시설물 보호를 요청한 상태다.
앞서 현대제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바로잡으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와 고용노동부의 시정지시를 수용하며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업체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대제철은 내달 1일 현대아이티씨 등 자회사 3곳을 공식 출범하고 당진, 인천, 포항 사업장의 협력사 직원을 흡수할 계획이다.
이미 전체 협력사 직원 7000명 가운데 5000명가량이 입사에 응해 채용 절차가 끝났다. 자회사 소속 직원은 현대제철 정규직 임금의 80% 수준을 받는다. 이는 기존 60%보다 상향된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직원 2000여 명은 자회사 입사를 거부하며 현대제철의 직접 고용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소속이다.
비정규직 노조는 “하청 노동자를 자회사에 고용하는 건 꼼수”라며 “불법파견 처벌을 피하고 민주노조를 파괴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25일 금속노조와 함께 당진제철소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현대제철 측은 “제조업 최초로 자회사를 만들어 대폭 상향된 근로조건으로 직원을 직접 고용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반대할 명분이 없다”라며 비정규직 지회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도 “모기업 형태로 된 회사가 100% 내지는 일부를 출자해 자회사를 설립하고, 모자간 관계에서 영업과 사업을 완전히 분리해 다른 회사로 운영한다면 법리적으로 불법파견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비정규직지회와 자회사 채용에 응한 협력사 직원, 현대제철 정규직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노노 갈등을 우려하고 있다. 자회사 채용에 응한 직원 일부는 한국노총 소속이고, 반대하는 직원 대부분은 민주노총 소속이라서다.
또한, 지난해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온 인국공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국공 사태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일부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힌 뒤 본사 정규직과 극심한 갈등을 겪은 일이다.
이미 현대제철 정규직 직원들은 비정규직지회의 요구와 실력 행사에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현대제철 소속 한 직원은 “그들은 엄연히 협력업체에서 ‘정규직’으로 근무 중이지만, 노조 이름을 ‘비정규직지회’로 설정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로 생각 들게끔 하고 있다”라며 “입사를 위한 직원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인국공 사태와 다름이 없다”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