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0대 상장사의 사내유보금 중 현금성 자산 비중은 16%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대부분이 투자를 위해 차입을 고려할 정도로 현금성 자산을 충분히 보유하지 못한 만큼, 사내유보금 과세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5일 한국산업연합포럼(KIAF)은 ‘우리 기업들, 사내유보금 과도하게 보유하고 있나’라는 주제로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정만기 KIAF 회장은 “정치권을 포함한 일부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쌓아 놓은 막대한 사내유보금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는 인식을 하고 있고, 심지어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을 풀어 국민경제가 선순환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라며 “오늘 세미나는 사내유보금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개최했다”라고 밝혔다.
김태동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연구원은 ‘사내유보금 현황 및 정책 시사점’ 주제발표에서 사내유보금의 법률상 의미를 명확히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사내유보금은 배당 등으로 사외에 유출되지 않고 법인 등이 보유하고 있는 누적된 순이익”이라며 “이를 재투자되지 않고 통장 속에 유보된 현금으로 인식하는 것은 대표적인 오해”라고 말했다.
발표에 따르면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대부분 설비, 연구, 실물자산 등으로 재투자 되고, 현금과 현금성 자산의 비중은 일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KIAF가 코스피 시가총액 30대 기업의 올해 1분기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평균 사내유보금은 25조3000억 원으로 이 가운데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6.7%인 4조2000억 원에 그쳤다.
그런데도 한국의 사내유보금 과세 정책은 지속해서 강화돼 미환류 소득의 산출세액은 2016년 553억 원에서 2019년 8544억 원까지 증가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사내유보금이라고 해서 기업이 회사 내에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투자해서 고용을 늘리라고 하는 것은 기업 회계에 대한 지식이 없는 무지에서 비롯된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내유보금은 기업 설립 이후 벌어들인 잉여금과 자본거래금 등에서 발생한 이익의 합이며, 대부분은 이미 공장설비, 부동산, 지식재산권, 주식 등으로 보유하고 있는 투자로 사용된 금액”이라며 “이미 세금을 부담하고 남은 자산인데, 여기다 또 당기 소득의 60%∼80%를 투자, 임금 등으로 환류하지 않았다고 해서 미환류 소득으로 분류하고 이에 대해 20% 과세를 하는 것은 명백히 이중과세가 된다”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사내유보금 규모로 대규모 투자나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워 차입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KIAF 조사에서 시설투자를 위해 사내유보금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기업의 절반가량(45%)은 유보금 규모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부족한 사내유보금을 조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84.6%가 ‘차입’이라 밝혔고, △유상증자 15.4% △채권 발행 7.7%가 뒤를 이었다.
이만우 민간연기금 투자풀 운영위원장(고려대 명예교수)은 “기업의 유보소득에 대한 추가 과세는 선진국 과세 제도에는 유례가 없는 중복과세의 성격이 확연하다”라면서 “정부가 법인세를 매우 복잡하게 만든 결과, 외국인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고 미래 전망을 기초로 이뤄져야 하는 기업의 투자 결정이 유보소득 과세를 의식해 무리한 투자 시점 결정을 초래함으로써 투자 실패 위험이 커져 기업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