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과는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조선 경기가 좋아 졸업하면 취업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높은 인기 덕분에 지방 대학에도 조선학과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원자력학과 입학 경쟁률도 치열했다.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화석 연료 에너지의 대체원으로 원자력이 주목받은 데 따른 영향이다.
조선ㆍ원자력 학과의 위상은 최근 180도로 달라졌다. 선박 수주 급감, 정부의 탈원전 정책 등으로 업황이 악화되자, 인기는 자연스레 떨어졌다.
조선ㆍ원자력 학과 기피 움직임은 특정 대학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최고 인재들이 모이는 서울대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2021학년도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수시모집 일반전형 경쟁률은 4.04대 1이다.
조선사들이 역대급 호황을 누렸던 2008년(8.46대 1)보다 대폭 낮아졌다. 지역균형 선발전형 경쟁률은 1.89대 1에 그쳤다.
같은 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수시모집 일반전형 경쟁률은 4.67대 1이다. 탈원전 정책을 내세운 현 정권이 들어서기 직전 해인 2016년(6.41대 1)보다 크게 낮아졌다.
조선ㆍ원자력 학과 입학을 원하는 젊은 인재가 늘어날 가능성은 적다. 채용문을 넓혀야 할 기업들이 침체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삼성중공업은 2016년부터 상시 희망퇴직을 운영하고 있다. 중형 조선사들은 최근 건설사 등 새 주인을 맞았지만, 경영 정상화가 언제 이뤄질지 불투명하다.
국내 대표 원전 개발 기업인 두산중공업은 작년 명예퇴직, 유휴인력 휴업을 진행했다. 그 여파로 지난해 4731억 원의 적자(별도기준)를 기록했다.
인재 감소는 산업 현장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다. 조선ㆍ원자력 업체 인력들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다른 업종으로 떠나는 사례가 많아졌다.
지난해 특허청이 발표한 조선분야 기술ㆍ특허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조선 분야 연구인력은 822명으로, 2014년(1738명)보다 53% 감소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전체 조선소 고용 인력은 10만 명 전후”라며 “지난해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수주 감소로 인력은 더욱 줄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자력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가 작성한 2019년 원자력 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9년 원자력 산업 분야 전체 인력은 3만5469명으로, 전년(3만6502명)보다 2.8% 줄었다.
인력난으로 우리나라가 고민할 때 경쟁국들은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조선의 경우 중국은 ‘중국 제조 2025’의 10개 산업 육성 분야에 첨단기술선박을 포함했다. 중국 은행은 자국 조선소가 선박을 건조할 때 선가의 60%에 대한 보조금을 제공한다.
일본은 해운사가 해외에 설립한 특수목적회사를 통해 자국 조선업체 선박을 구매하도록 지원한다. 올해 5월에는 자국 조선사들에 대한 지원 강화를 골자로 한 법안이 의회에 통과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대표적인 친환경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선은 우리나라가 확실한 우위를 가지고 있다”며 “문제는 무탄소연료 선박이다. 중국ㆍ일본 정부의 전방위적인 지원이 결실을 본다면, 우리나라는 ‘글로벌 조선 시장 1위’ 자리를 빼앗길 것”고 분석했다.
원자력에선 러시아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러시아는 지난해 원전 수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러시아 국영 원전 기업인 로사톰은 작년 전 세계 원전 건설 시장점유율 선두에 올랐다.
중국은 최근 차세대 원자로인 토륨 원자로 설계도를 공개했다. 토륨은 기존 원료인 우라늄보다 적은 운용 비용으로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중국, 러시아의 원전 기술은 아직 서구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재정 지원으로 원자력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