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사 10곳 중 8곳은 외부감사 비용과 시간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외부감사법에 따라 표준감사시간 및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가 도입돼 감사시간이 매우 증가한 데다 주기적 지정감사제로 기업의 협상력이 크게 저하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2018년 말 시행된 신외부감사법은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주기적으로 감사법인을 지정하고 자산규모·업종 등에 따라 적정 감사시간을 적용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30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신외부감사법 시행에 따른 애로와 개선과제’를 조사한 결과, 2020년도 감사보수가 전년 대비 증가한 상장사가 전체의 83%에 달했다고 2일 밝혔다.
79%의 상장사들이 감사시간도 증가했다고 응답해, 외부감사와 관련된 기업부담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시행 첫해인 2019년은 감사시간 및 비용 증가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지만, 2020년에도 증가추세가 지속돼 기업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라며 “특히 인력 및 조직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더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보수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기업들은 △주기적 지정감사제(39.2%) △표준감사시간 도입(37.7%)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17.0%) 등을 꼽았다.
‘주기적 지정감사제’는 상장사 등이 6년간 감사인을 자율선임한 경우 다음 3년은 정부로부터 지정받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으로서는 감사인을 선택할 권한이 없어, 협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번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49.2%가 ‘지정감사 관련 애로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인 애로로 기업들은 ‘자율수임 대비 높은 감사보수 요구’(74.6%)를 첫손에 꼽았다. 이어 ‘신규 감사인의 회사특성 이해 부족’(60.3%) ‘불명확한 회계기준에 대한 해석 차이로 과거 감사인-신규 감사인 간 이견 발생’(44.4%) 순으로 답했다.
정도진 중앙대학교 교수는 “현재 지정감사제는 기업에 선택권을 부여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감사인을 지정하는 문제가 있다”면서 “기업들은 높은 감사비용을 감수하는 가운데 충분히 감사품질을 제고할 능력 있는 감사인이 지정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표준감사시간 도입도 감사시간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거론됐다. 표준감사시간이란 감사인이 투입해야 하는 적정 감사시간으로, 기업규모 및 업종, 상장여부 등에 따라 산출된다. 표준감사시간이 도입된 후 기업들에 2020년 감사시간 증가율을 조사했더니 직전년도 대비 ‘10~50% 증가’(42.6%), ‘10% 미만 증가(21.0%)’ 순으로 답했으며, ‘50% 이상 증가한 기업’도 9.9%로 나타났다.
감사시간 증가에 따라 감사보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 조사에서 40.7% 기업이 ‘표준감사시간 관련 애로를 경험했다’라고 답했다. 세부적으로는 애로 경험 기업 중 87.1%가 ‘감사보수 증가’를, 33.1%는 ‘과도한 감사시간 산정’을, 29.0%는 ‘거래량이나 거래구조의 복잡성과 무관한 감사시간 적용’ 등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현행 산정방식은 주로 자산규모나 업종 등에 따라 정해져, 거래량이나 거래구조 등 개별기업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