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입은 영업상 피해를 보상하는 손실보상제 법제화 과정에서 소급적용 여부를 놓고 정부와 소상공인, 국회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소상공인ㆍ자영업자 단체는 “헌법이 보장한 국가의 의무”라며 손실보상 소급적용을 요구하고 있지만, 국가는 재정과 형평성 등 문제로 소급이 사실상 어렵다고 밝히면서다. 소급적용을 놓고 갈등의 불씨가 달아오르는 가운데, 방향키를 쥔 국회는 여야 간 합의 불발로 손실보상법 처리를 미뤘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8일 국회에서 손실보상법 처리에 대해 “사실상 4월엔 통과하기 힘들어졌다”며 “5월에 마무리 지어야 한단 입장”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손실보상제 소급적용 문제의 해답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손실보상제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내린 조치로 영업손실을 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해 정부가 보상하는 제도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행정 조치 기간이 길어지면서 피해 규모도 커지자, 정부와 국회, 관련 단체는 해당 제도를 법제화하는 것에 합의했다.
문제는 적용 기간이다. 보상 기간을 법안 발효 전부터 소급해야 한단 주장과 소급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단체는 꾸준히 손실보상 소급적용을 요구해 왔다. 정부의 행정 조치에 따라 지난해부터 영업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면서 발생한 손실은 정부가 보상해야 한단 주장이다. 근거는 헌법 23조 3항(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이다.
이들은 올해 초부터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손실보상제도를 법제화하고 이를 코로나19 확산 이후부터 소급해 적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와 피시방, 당구장 등 영업제한·금지 조치를 받은 업종 단체가 모여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러한 주장을 이어왔다.
전날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은 국회 앞에서 “방역 조치에 따른 피해를 정당하게 보상하는 법안을 입법하는 건 국회의 소임”이라며 “헌법에서도 자영업자가 행정명령에 따른 집합금지ㆍ제한 조치로 손실을 봤다면 정부가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하며 소급적용을 촉구했다.
또한 소공연은 26일 연 기자회견에서 “벌써 3개월이 넘도록 아직도 이 법안(손실보상법)은 법안소위 문턱마저 넘지 못하고 있다”며 “최소한 3차 대유행 이후의 영업정지·제한과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해 피해업종·일반업종을 가리지 않고 국가가 나서 소급해 보상함이 마땅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정부는 소급적용에 대해 부정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재정이다. 지난해 직접 지원 방식으로 투입한 재정을 소급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고, 향후 투입할 재정 또한 최대 100조 원에 달하는 만큼 현실적으로 소급 적용이 어렵단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관계자는 “그간 재난지원금이 14조 원가량 나갔는데, 손실보상 소급적용을 하면 이와 중첩되는 부분이 생긴다”며 “앞서 피해 지원한 금액을 제외하고 앞으로의 손실 보상을 지원하는 것이 정부 안의 골자”라고 말했다. 이어 “재정 투입 규모를 추산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와 계산 식이 필요하다”며 “정교한 손실보상 계산 식을 만들고 소득세 등 데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형평성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전날 권칠승 중기부 장관은 “대상을 보면 행정명령 대상이어야 할 텐데 조치를 받은 업체에 대해 받은 기간만 (소급적용을) 하게 된다”며 “이런 방식으론 여행업 등 영업금지나 제한을 받은 적이 없으나 매출이 80%가량 줄어든 업종은 지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손실보상 소급적용을 결정할 공은 국회로 넘어간 상태다. 다만 열쇠를 쥔 국회에서 합의하지 못하면서 손실보상제 법제화까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국회는 손실보상 법제화 자체에는 동의한 상황이지만 소급 여부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 크게 보면 국민의힘, 정의당 등 야권은 손실보상 소급적용에 동의한다. 민주당 내에서도 초선 의원과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소급적용을 해야 한단 의견이 나온다. 다만 현실적인 수준에서 조정해야 한단 의견이 우세하고, 보상 기준 시점에 대해서도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법안은 지난해 중순부터 총 23개가 발의됐다. 소급적용 여부부터 개정 법안, 보상 규모까지 모두 다르다. 전날에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기위) 법안소위 상정 안건을 놓고 합의하지 못하면서 회의가 불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