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채를 정부가 국가보증채무에 산입해 공식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일 발표한 ‘공기업 부채와 공사채 문제의 개선방안(황순주 시장정책연구부 연구위원)’ 보고서에서 “공기업 부채가 많은 것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는 없다”며 “그러나 우리나라 공기업 상당수는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약하면서 부채만 많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 2020년 추정치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금융공기업 부채는 2017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23.5%로, 추정치가 존재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평균(12.8%)을 두 배 가까이 웃돌았다. 순위로는 노르웨이어 이어 두 번째다. 다만 노르웨이는 자산이 부채보다 월등히 많아 우리와 단순 비교가 어렵다. 이를 고려하면 사실상 OECD 회원국 중 비금융공기업 부채가 가장 많다. 금융공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KDI가 IMF와 세계은행(WB)의 국제기준에 따라 GDP 대비 금융공기업 부채를 추정한 결과,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문제는 부채의 질이다. 한국 공기업들은 은행권 융자가 아닌 공사채 위주로 부채를 조달한다. 파산이 우려되는 공기업 채권의 원리금을 정부가 대신 지급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지급보증으로 낮은 이자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서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면 공기업들의 국제신용등급은 6~11계단 하락하게 된다. 2016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인 한국광물자원공사의 경우, 무디스(Moody’s) 기준 올해 국제신용등급이 A1이지만, 독자신용등급은 B3(투기등급)로 무려 11계단 하락한다. 지급보증이 없다면 정상적인 공사채 발행이 어려운 정도다.
KDI가 2000~2018년 발행된 일반채권 3만5000개를 대상으로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비금융공기업은 비금융민간기업보다 0.51%포인트(P)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공기업도 민간보다 0.17%P 낮았다. AAA 등급 채권만 보면 할인 효과는 0.20%P 내외다.
KDI는 이런 암묵적 지급보증에 따른 공사채 남발이 공기업과 정부의 ‘이중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공기업은 공사채로 얼마든지 ‘싼 비용’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므로 수익성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고, 정부는 대규모 국책사업 시 공기업을 통해 사업을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국회나 재정당국의 통제를 벗어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런 관행은 한국석유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를 자본잠식 상태로 만들었다.
이에 KDI는 공사채 채무를 국가보증채무에 산입하고, 위험연동 보증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언했다. 또 공기업에 자본규제를 도입하고, ‘투자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채권자-손실부담형(bail-in)’ 채권을 공기업 부문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 연구위원은 “이 보고서가 공기업의 공공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민간기업과 달리 공공성과 재무성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공공성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공공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재무성을 약간 포기하더라도 국가보증을 명시적으로 제공해 추진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