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추억이 담긴 거리가 사라지고 있다. 오랜 기간 한자리에 머물며 골목을 든든히 지킨 '특화 거리'가 코로나 19와 비대면 전환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움과 행복이 담긴 장소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사람들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거리는 적막감이 감돈다. 사라져가는 골목 속 이야기를 조명한다.
“하루 10만 원은 팔아야 하는데 1000원 팔릴까 말까예요. 재고가 쌓여 있지 않았다면 작년에 문 닫았을 겁니다. 남아있는 보증금도 이제 없어요.”
12일 창신동 문구 거리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 대신 적막감이 가득했다. 판매를 위해 거리에 늘여져 있는 장난감에는 먼지만 가득 쌓였다. 뒤로는 손님이 없어 무료한 가게 주인들이 계산대 앞에 앉아 턱을 괴고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임대 문의’ 종이가 붙었다. 한두 명의 보행자만 있을 뿐 온기를 찾아볼 순 없었다.
창신동 문구 거리는 1970년대 형성돼 국내 최대 ‘문구ㆍ완구 도매시장’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발생한 이후 이곳에 있는 점포 10곳 중 3곳은 문을 닫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장기화와 학교의 비대면 수업 전환으로 타격을 받았다. 가족 단위로 장난감을 사러 오는 손님도 급감했다.
오랜 시간 점포를 운영하며 거리를 만들어온 상인들은 체념에 가까운 한숨을 뱉는다.
창신동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한영준 씨(67)는 “크리스마스, 신학기도 모두 조용히 지나갔다”며 “거리를 보면 알겠지만, 가게들이 날마다 문을 닫고 나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가 난리인데 어쩌겠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자식들은 독립해서 다행”이라고 푸념했다.
이미 장사를 접은 점포는 그나마 다행이다. 문을 닫고 싶어도 재고를 처분하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을 이어가는 곳이 대다수다. 이들은 보증금도 전액 소진해 폐업해도 남는 게 없다.
25년째 같은 곳에서 완구를 팔고 있는 김모 씨(56)는 “장사가 안되니 매달 보증금을 까먹고 있는데 모두 소진되면 폐업할 생각”이라며 “재고가 없었으면 진작 나갔을 텐데 남은 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큰 고민”이라며 매대에 가득 쌓인 장난감들을 가리켰다.
이어 “매일 가게에 나오긴 하는데 하는 일이라곤 계산대 앞에 있는 텔레비전만 보다 가는 것”이라며 “작년도 올해도 매출이 없는 건 마찬가지인데 감소율이 적다는 이유로 4차 재난지원금(소상공인 버팀목 자금 플러스)은 받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반면 비대면 소비 증가로 온라인 문구ㆍ완구 쇼핑몰은 특수기를 맞고 있다. 거리 점포들이 사라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부가 소상공인들의 온라인 전환을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현장 반응은 냉담하다. 평생을 손님과 대면하며 살아온 영세 상인들에게 온라인은 그림의 떡과 같다.
완구점 점포 주인 김모 씨(61)는 “직원도 없고 손도 느리고 나이 든 우리가 어떻게 비대면을 할 수 있겠냐”며 “지금 와서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는데 공무원들이 쓸데없는 걸 하는 것 같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당장 앞으로 무슨 일로 먹고살지 걱정이다”라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