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이어 서울에서 잇따라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에 제동이 걸리면서 문재인 정부의 ‘고교평준화’ 정책에 부담이 커졌다. 자사고 등이 일반고로 전환되지 않고 존치될 경우 고교평준화 정책은 현 정부에서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이정민 부장판사)는 23일 학교법인 동방문화학원ㆍ신일학원이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로써 숭문고와 신일고는 당분간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7월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배재고ㆍ세화고ㆍ경희고ㆍ숭문고ㆍ신일고ㆍ이대부고ㆍ중앙고ㆍ한대부고 등 8개 학교에 운영성과 평가 점수 미달로 지정 취소를 결정했다. 경기 안산 동산고와 부산 해운대고도 자사고 지정이 취소됐다.
이에 서울 지역 학교들은 두 곳씩 나눠 자사고 지위를 유지해달라는 행정소송과 함께 취소 처분의 효력 정지를 구하는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이들 자사고 중 세화ㆍ배재고는 지난달 18일 먼저 승소 판결을 받았고, 이보다 앞선 지난해 12월에는 부산 해운대고가 시교육청을 상대로 낸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 이겼다. 5월 14일에는 중앙고와 이대부고, 5월 28일에는 경희고와 한대부고의 1심 선고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신현욱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정책본부장은 “잇따른 법원의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제동은 곧 고교평준화 제도에 브레이크를 건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지금 정권에서 고교 평준화 정책은 사실상 힘들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법원이 잇달아 교육 당국의 자사고 지정 취소가 위법하다고 결론 내리자 2025년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과 함께 시행될 '고교학점제' 정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사고가 존치된 상태로 고교평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학교 안에서 다양한 수준별 수업이 가능하도록 한 고교학점제는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예정대로 2025년 자사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2025년 모든 외국어고·국제고·자사고를 일반고로 바꾸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이 다 끝난 사안이라 자사고에 대한 일반고 전환 정책이 변동되는 부분은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수도권 자사고와 국제고 등 24개교가 정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이 기본권 등을 침해한다며 지난해 헌법소원 심판이 변수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할 경우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정책은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재판에서 잇단 고배를 마신 서울시교육청은 숭문고와 신일고에 대한 법원 판결 직후 다른 소송과 마찬가지로 항소의 뜻을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배재·세화고를 상대로 항소한 상태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들 학교 대한 자사고 지정 취소는 2019년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에 따른 적법한 절차라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행정의 영역에서 고도의 전문성에 기반을 둔 적법한 행정처분이 사법부에 의해 부정당한 것"이라며 "자사고 소송과는 별개로 고교서열화를 극복하고 일반고 역량을 강화하는 등 고교교육 정상화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전흥배 숭문고 교장은 선고 후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과 교육에 전념해야 할 시간에 법정에 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항소를 취하해달라고 마지막으로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