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계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개발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용 플랫폼으로 전기차를 생산해야 성능 개선과 비용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서다.
플랫폼은 자동차의 차체와 변속기 등 기본 요소를 구성해둔 일종의 뼈대다. 완성차 제조사는 지금까지 내연기관차 플랫폼에 배터리와 구동 모터만 얹는 방식으로 전기차를 생산했다. 현대차의 대표적인 전기차 코나도 가솔린과 디젤 모델이 먼저 출시됐다.
전기차는 엔진과 변속기가 필요 없고 부품의 개수도 내연기관차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내연기관차에 맞춰진 플랫폼을 이용해 전기차를 생산하면 불필요한 공간이 발생하고, 최적의 성능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공간은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
반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전동화에 최적화한 구조를 갖췄다. 무거운 배터리를 차량 하부에, 전륜과 후륜에는 전기 모터를 배치해 더 넓고 안정적인 실내공간을 확보했다. 디자인의 자유도 역시 높고, 급속충전 등 전기차에 필요한 기술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기존 전기차와 달리 차별화한 설계를 통해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생산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지금껏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혼류 생산했기 때문에 필요 없는 공정을 거치기도 했다. 전용 플랫폼으로 전기차를 만들면 최적화한 공정을 갖춰 생산 효율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비용까지 낮출 수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를 전용 플랫폼에서 얼마나 단순한 구조로 만들어내느냐가 현대차ㆍ기아의 흑자 여부를 가릴 요소”라며 “전용 플랫폼이 갖춰지면 장기적으로 전기차의 가격도 낮아지고 회사의 영업이익도 높아질 것”이라 전망했다.
주요 완성차 업계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개발 경쟁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폭스바겐은 지난해 ‘MEB’ 플랫폼 바탕의 전기차 ‘ID.3’를 선보이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MEB 플랫폼은 대용량 배터리를 바닥에 설치해 실내공간을 넓히고, 주행거리를 늘린 점이 특징이다. 30분 만에 배터리를 80% 충전할 수 있는 급속 충전 시스템도 갖췄다.
다임러(EVA), GM(BEV 3), 토요타(e-TNGA), 르노-닛산(CMF-EV) 등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개발해 신차에 적용 중이다. 전기차 전문 제조사 테슬라는 처음부터 전용 플랫폼을 사용해 혁신적인 디자인과 생산 효율성을 갖출 수 있었다.
현대차그룹이 전용 플랫폼 'E-GMP' 기반의 '아이오닉 5'를 23일 선보이며 완성차 업계의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간 전기차 시장을 지배하던 테슬라의 일방적인 독주도 어려워질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는다.
완성차 업계는 장기적으로 전용 플랫폼을 판매하는 단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자체적으로 전용 플랫폼을 개발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만큼, 플랫폼을 납품받아 자사 전기차를 만드는 완성차 업체가 늘어날 수 있어서다. 실제로 폭스바겐은 MEB 플랫폼을 포드에 공급하기로 하는 등 전기차 플랫폼 시장 자체도 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