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사의 정기 주주총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공시된 안건을 살펴보면 현대차그룹의 이번 주총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지원역량(Support capacity), 주주 친화(Stockholder friendly), 승계(Succession)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2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ㆍ기아를 비롯한 그룹사는 3월 말 정기 주총을 열고 신규 이사 선임과 사업 목적 추가 등을 논의한다.
◇이사회 개편해 지속가능성 확보=이번 주총의 화두는 ‘지속 가능성’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이사회 조직을 정비하고 여성 이사를 처음으로 선임할 계획이다.
현대차ㆍ기아ㆍ현대모비스는 이사회 내부의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 경영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위원회에 ESG 관련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한다. 사외이사로만 구성될 지속가능 경영위원회는 투명경영위원회의 역할뿐 아니라 ESG 정책과 계획, 주요 활동을 심의, 의결하는 권한을 추가로 갖게 된다. 2015년부터 운영된 투명경영위원회는 내부거래 투명성 확보, 대규모 투자 검토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지속가능 경영위원회는 회사의 안전 대책을 살펴보는 권한도 갖는다. 회사가 수립한 안전보건 계획을 검토해 수정, 보완 등의 의견을 제시하며 산업재해 등 회사 내부의 위험 요인을 제거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사상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도 선임한다. 이사를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새 자본시장법 시행에 앞서 유능한 여성 이사를 확보하고, 이사회의 다양성을 높이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기아는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현대모비스는 강진아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를 각각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현대글로비스도 윤윤진 카이스트 건설ㆍ환경공학부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지명했다.
◇모빌리티 전환 지원 역량 확보=그룹 계열사는 현대차와 기아가 차세대 사업으로 제시한 항공 모빌리티와 로보틱스를 사업 목적에 추가한다. 그룹의 모빌리티 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현대모비스는 항공 모빌리티와 로봇 부품 제조ㆍ판매업을, 현대글로비스는 로봇의 제조ㆍ수출입ㆍ유통ㆍ임대ㆍ유지보수와 관련 서비스업을 각각 사업 목적에 추가할 예정이다.
앞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회사의 미래 사업이 자동차 50%, PAV(개인 비행체) 30%, 로보틱스 20%가 되고, 그룹은 그 안에서 서비스를 주로 하는 회사로 변모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계열사 관계자는 “그룹의 신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사업목적에 항공 모빌리티와 로봇 관련업을 추가하게 됐다"라며 "지난해 말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계열사 지분이 들어가는데, 이에 대비하려는 목적도 있다"라고 밝혔다.
◇투명성 강화로 주주 신뢰 제고=투명한 정보 공개로 주주 친화 정책도 편다. 현대모비스는 임원의 퇴직금을 산정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공시하고 주총에서 이를 승인받을 계획이다.
현대모비스 이사의 퇴직금은 퇴임 시점의 월평균급여(3개월 평균)에 재임 연수와 직급에 따른 지급률을 곱해 산정된다. 수년 전부터 내부적으로 적용되던 산정 방법인데, 현대모비스 보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이번 주총을 앞두고 처음 공개됐다.
임원의 퇴직금이 불투명한 과정을 거쳐 결정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상장사들이 이사의 퇴직금을 산정하는 방법을 주주에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현대모비스의 이번 결정은 내부적으로 존재하던 기준을 주주에게 알려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정의선 시대 공식화=이번 주총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현대모비스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며 ‘정의선 시대’가 공식화한다. 정 명예회장은 그룹 내 공식 직함을 모두 내려놓으며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이미 정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라 등기이사 퇴임도 예정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정 명예회장이 미등기임원직을 유지하며 그룹 차원의 고문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