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최근 '취업 제한'과 관련해 화제가 됐다. 취업 제한 규정 적용을 놓고 찬반 의견도 분분하다. '과도하다'는 지적과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선다.
정부가 주요 경제사범을 대상으로 취업 제한을 통보하는 근거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이다. 특경법 제14조에 따라 5억 원 이상의 횡령ㆍ배임 등을 저지른 경제사범은 취업 제한 대상이 된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는 형 집행이 종료된 날부터 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유예 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다.
취업 제한 규정은 1983년 12월 중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같은 달 말에 공포됐다.
정부는 같은 해 11월 '경제범죄가 날로 대형화ㆍ조직화ㆍ지능화되고 경제ㆍ사회에 미치는 피해가 막심해 그 근절대책이 시급한 사정'을 근거로 특경법 제정안을 제안했다. 취업 제한 규정은 특경법 제정안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후 취업 제한 규정은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18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취업 제한 규정이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듬해 5월 시행령 개정을 거쳐 법무부 장관 자문기구인 '특정경제사범 관리위원회'가 다시 설치됐다. 관리위가 설치되면서 취업 제한 규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사례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꼽힌다. 이 부회장은 15일 취업 제한 대상자가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지난달 18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회삿돈 약 86억8000만 원을 횡령해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반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8일 취업 제한이 해제됐다. 김 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14년 2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종료 후 2년간 (주)한화 등 주요 계열사에 대한 취업이 제한됐다.
경영계는 취업 제한 규정에 반발하고 있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하고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당시 시행령 개정으로 '재산상 이득을 준 기업체'뿐만 아니라 경제사범이 재직했던 회사로 복귀하는 것 역시 제한되자 위임 입법의 한계를 일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취업 제한 규정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해당 규정이 사실상 형벌처럼 작용해 법원 판단 없이 정부가 권한을 행사하도록 한 것은 잘못됐다는 비판이다.
취업 제한 규정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가 아니다. 미국은 경제사범을 해당 업계에서 영구 퇴출하기도 한다. 독일도 '직업금지 명령'을 두고 있지만 활용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경영계 일각에서는 취업 제한 규정을 두고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아무래도 취업 제한을 적용받게 되면 출입국 제한이나 경비 처리 문제 등으로 기업 활동에 상당히 애로가 많다"고 지적했다.
업무상 배임죄에 따른 취업 제한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업무상 배임죄는 경영 실패에 대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취업 제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 오너들에 대해 취업이 제한되는 사례들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활용되는 배임죄를 통해 취업 제한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시정돼야 한다"고 했다.
취업 제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노동계에서 활동하는 한 변호사는 "성범죄를 저지르면 관련 기관에 취업이 제한되는 것처럼 횡령이나 배임 같은 경제범죄도 죄를 저지르면 제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취업 제한의 효과에 대해서는 "(취업 제한을 통해) 재벌 회장 밑에 있는 사장이나 임원들, 실무자급이 횡령이나 배임에 가담하는 것을 막는 데는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재벌 회장들은 말이 취업 제한이지 뒤에서 경영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