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해외 제약사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물량을 처음 확보했다. 세계 각국이 백신의 허가와 접종을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당초 예정보다 접종 시기가 앞당겨질지 관심이 쏠린다.
3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영국의 다국적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공급 계약서에 서명했다. 정확한 확보 물량은 내주께 발표할 계획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해외 백신 개발사 중 유일하게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내 허가를 위한 사전 상담을 신청했다. 식약처는 허가전담심사팀을 구성, 아스트라제네카가 제출한 비임상 시험자료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식약처는 코로나19 백신·치료제의 신속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고(GO) 신속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임상과 허가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축소하기 위한 정책이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승인을 신청하면 고 신속 프로그램의 적용을 받는다. 김희성 식약처 신속심사과 과장은 "신청한 시점에서 1~2개월 이내에 심사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식약처가 지난 10월부터 아스트라제네카의 자료 검토에 나선만큼 허가 과정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유럽의약품청(EMA) 등 선진 규제당국의 허가를 먼저 획득하면 더욱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허가받은 의약품은 관련 자료를 이미 갖췄기 때문에 국내 신청 절차가 더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백신 허가와 접종 시기는 다른 문제다. 정부는 코로나19 백신이 전례 없이 빨리 개발된 만큼, 효능과 안전성을 충분히 검토한 후 접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접종 시기는 내년 가을께로 예정하고 있다. 이달 중 접종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영국, 미국 등과는 시차가 크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접종 시기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상원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식약처와 협조해 정밀하면서도 신속한 백신 승인 절차를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접종시기나 대상자, 결과는 협상이 마무리된 후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을 위탁생산(CMO)하는 나라 중 한 곳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지난 7월 글로벌 공급을 위한 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당 백신을 우리나라에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됐지만, 아직 확정된 사안은 없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상업화 계획에 따라 각 CMO에 생산 물량을 배정할 방침"이라며 "개발 단계별 생산 물량은 이미 세부적으로 논의가 된 상태라 현재로선 국내 접종 물량을 추가 생산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안동 백신 공장을 풀 가동할 경우 최대 5억 도즈 생산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투여량에 따른 효능 차이를 지적,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백신의 효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이 같은 의문을 규명하기 위해 저용량 투여 방식에 대한 추가적인 글로벌 임상 시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와 별개로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은 현재 적합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은 1도즈(1회 접종분) 당 공급 가격이 3~5달러(약 3300~5500원)에 책정됐다. 화이자 19.5달러(약 2만1000원), 모더나 15~25달러(약 1만6000~2만7000원)와 비교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이다. 또한, 영하 70도를 유지하며 유통해야 하는 화이자의 백신과 달리 2~8도에서 유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년도 정부 예산 9000억 원을 모두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구입에 쓴다고 단순 가정하면 최대 2억7000만 도즈까지 확보할 수 있다. 총 1억3500만 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이다. 반면, 화이자의 백신은 1도즈 당 약 2만 원으로 6배 이상 비싸 2250만 명분만 구매 가능하다. 그러나 다국적제약사들의 백신 생산 물량은 한계가 있고,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이 막대한 물량을 일찌감치 선점했기 때문에 실제로 어느 회사의 백신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