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조세 강화로 한동안 강보합세를 이어가던 서울 강남권 집값이 최근 다시 들썩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비사업이 진척될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서서히 상승폭을 키워가는 양상이다.
한국감정원이 3일 발간한 주간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이번 주 서울의 아파트값은 0.03% 상승했다. 지난주 0.02%에서 상승폭이 확대됐다.
강남4구는 일제히 오름폭이 커지면서 서울의 상승세를 견인했다. 강남구는 지난주 0.03%에 이어 이번 주 0.04% 상승했다.
서초구와 송파구는 나란히 0.02%에서 0.03%로 확대됐다. 강동구도 0.01%에서 0.02%로 상승폭을 키웠다.
강남4구는 정비사업 진척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급격히 치솟은 뒤 한동안 관망세를 보이던 집값을 또 한 차례 자극하는 모습이다. 구별로 △강남구는 압구정‧개포동 △송파구는 잠실‧방이동 △서초구는 서초‧반포동 △강동구는 암사‧천호동 위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강남권에서 재건축이 활발히 추진 중인 압구정동의 ‘신현대9차’ 전용면적 111.38㎡형은 최근 28억 원에 팔렸다. 동일 평형의 직전 거래인 9월 27억 원에서 1억 원이 더 붙은 가격이다. 5월 24억 원, 6월 25억3000만 원 등으로 거래가 될 때마다 1억 원 넘게 올라가는 중이다.
압구정동 ‘현대6차’ 전용 144.2㎡형은 지난달 37억5000만 원에 매매 거래됐다. 10월 36억 원에서 한 달간 1억5000만 원 치솟은 가격이다. 5월 거래가인 32억8000만 원보다는 반년 새 5억 원 가까이 폭등했다.
인근 H공인 관계자는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강남권에 재건축 바람이 불면서 인근 집값이 급격하게 뛰고 있다”며 “재건축을 추진하는 구축 단지들이 대형 평수 위주로 조성돼 있기 때문에 기본 가격이 세고 오름폭도 크게 나타나는 편”이라고 전했다.
강남권에 불어 닥친 정비사업 영향으로 재건축을 추진하지 않는 인근 단지들도 덩달아 상승 기류를 탔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84.99㎡형은 지난달 22억9000만 원에 팔렸다. 동일 평형은 10월 20억8000만 원에 매매 거래된 바 있다.
인근의 ‘잠실엘스’ 전용 84.97㎡형은 지난달 초 21억3000만 원에서 최근 22억5000만 원으로 거래가가 뛰었다.
잠실동 W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신축에 속하는 대단지들의 거래가 꾸준히 이뤄지면서 거래가격이 일시적인 등락을 보이기도 하지만 기준선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고 계속 올라가고 있다”며 “이곳의 집주인들은 중장기적으로 강남권의 재건축 사업이 추진될수록 이주하는 수요 등으로 인한 반사이익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재건축을 틀어막은 정부와 서울시의 정책이 결국 강남권 집값을 계속해서 폭등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중장기 계획을 세워 순차적으로 재건축을 풀어줘야 하는데 시기를 지연시켜 일시에 몰리면서 가격이 치솟는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은 “강남에 살고 싶은 신규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신규 공급은 없기 때문에 집값이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며 “앞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는 물론 인근의 아파트들까지 동시다발로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 교수는 “강남의 주거지가 형성된 건 비슷한 시기이기 때문에 그동안 재건축을 막아오면서 정비사업 단지가 누적돼 왔다”며 “정부는 이제라도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세우고 순차적으로 재건축 승인을 조율하면서 시장에 지속적인 신규 공급 시그널을 보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