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만의 독특한 제도인 ‘선거인단제도’가 선거의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지적을 받으며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2016년 대선을 비롯해 대선 때마다 논란을 빚은 이 제도를 두고 21세기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선거인단제도란 일반 유권자들의 선거 결과에 따라 해당 주의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제도다. 선거인단 수는 해당 지역의 하원의원과 상원의원 수를 합한 것으로 각 주의 인구 비례에 따라 할당된다. 즉, 캘리포니아주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뽑은 유권자가 더 많으면 캘리포니아의 선거인단 55명은 몽땅 바이든 후보가 가져가는 식이다. 미국 50개 주와 워싱턴D.C. 가운데 2개 주(메인·네브래스카)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승자독식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승자독식제 탓에 전체 득표수가 많아도 선거인단 수에서 밀리면 패배하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는 도널드 트럼프보다 300만 표가량을 더 확보했지만, 선거인단을 227명밖에 확보하지 못하며 백악관 입성이 좌절됐다.
2000년에는 앨 고어 민주당 대선후보가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보다 더 많은 득표를 얻고도 선거인단에서 패배하자 결국 연방대법원에서 소송전을 벌였다. 당시 격전지였던 플로리다주에서 앨 고어는 537표 차로 부시에 패배했다. 통상 선거인단 538명 중 과반수인 270명을 ‘매직넘버’라고 부르는데, 부시는 플로리다에서의 승리로 271명을 확보하며 매직넘버를 겨우 넘겼다. 플로리다주 대법원은 수작업 재검표를 명령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재검표 중단을 지시하며 부시의 손을 들어줬다.
선거인단제도에 대한 비판 중 가장 힘을 얻고 있는 것은 노예제를 바탕으로 한 제도라 태생부터가 잘못됐다는 비판이다. 선거인단제도를 확립할 당시 남부지역에는 노예제도가 존재했는데, 노예들은 투표권이 없어 북부 주들이 인구 수는 적었지만, 유권자 수는 더 많았다. 노예제를 유지했던 남부 주는 직접 선거를 하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며 투표권이 없는 노예 한 명당 5분의 3명으로 계산해 북부 주와 타협했다. 노예 숫자의 3/5만큼 인구가 늘어나 선거인단 수도 같이 늘어난 것이다. 지난 200년 동안 선거인단제도 폐지나 개혁을 골자로 한 법안이 700여 개나 의회에 제출됐지만, 통과된 것은 하나도 없다.
2018년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 65%는 직접 투표 방식으로 대통령선거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현행 선거인단제도를 지지한 사람은 32%에 불과했다. 알렉산더 키샤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역사학 교수는 “남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직접 선거에 반대했다”며 “만약 선거인단제도가 없었다면 그들이 영향력을 잃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거인단제도가 백인 우월주의에 뿌리를 둔 제도라고 주장한 것이다. 미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타임은 “21세기에 맞는 제도인지 미국인 스스로 질문할 차례”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