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코로나에 세계화 좌초…뱃머리 돌리는 기업들

입력 2020-10-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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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서플라이·제조업 리쇼어링 통한 '주식회사 코리아'

세계를 호령하던 에스파냐의 ‘무적함대’ 같았던 세계화 신화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단 한 순간에 무너졌다. 경영 효율성을 이유로 전 세계 기업은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국가에 진출함으로써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해 세계화의 믿음을 키웠다. 그러나 작은 병원체의 등장으로 이 신화에는 금이 갔다. 세계가 빗장을 걸어 잠그며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 직간접 생산 방식을 손보기 시작하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나섰다. 필요하다면 비용이 들더라도 본국으로 회귀하는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도 과감하게 택하고 있다.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세계화의 후퇴)’의 확산으로 일부 국내 기업들 역시 부품 내재화와 공급망 지역적 다변화, 리쇼어링을 통한 국내 거점의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를 경쟁력 삼아 살아남겠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앞으로 위기가 끝나더라도 자유무역질서가 붕괴하고 자국 이익이 우선시 되는 방향으로 세계 경제가 변할 수 있어 살아가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의 지적이 기업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창궐 초반 공급망 붕괴의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중국산 와이어링 하네스 부품 공급 중단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태양광 기업들도 중국산 부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국내 생산 공장 가동을 멈추기도 했다.

전경련이 매출액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코로나19 확산 이후 글로벌 공급망 타격으로 기업활동 차질을 경험한 기업은 응답 기업 중 56.7%에 달했으며, 향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있을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48.4%였다.

▲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위기를 인식한 기업들은 중국 중심의 공급망을 재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국내 기업 간 공생관계를 구축하는 ‘주식회사 코리아’를 설립하는 전략도 세우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코로나19 발생에 앞서 일본의 수출규제로 공급망 다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일부 기업들의 행보에서도 감지된다.

배터리 소재에 대한 공급망 다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LG화학이 유럽에서 소재 조달을 하면서도 직접 생산에 나서는 한편 포스코케미칼 등 국내 협력사와의 거래도 늘리며 국산화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국내 기업 간 협력은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미래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3사와 동맹을 맺었다.

심지어 적과의 동침에도 거리낌이 없다. 코로나19로 석유화학 시장이 침체하자 롯데케미칼은 PIA(고순도 이소프탈산)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PTA(고순도 테레프탈산) 사업에서 손을 떼는 대신 경쟁자였던 한화종합화학으로부터 PTA를 공급받기로 했다.

공급망 재편의 대응 방안 중 하나로 리쇼어링도 부상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중국 공장의 문을 닫고 5개 중소·중견 현대차 협력업체와 울산으로 유턴을 결정했다. 효성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중장기 관점에서 리쇼어링이 해외진출보다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해 아라미드 생산설비 건설지를 베트남 대신 울산으로 낙점했다.

리쇼어링이 활발해진다면 글로벌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도 긍정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8년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 중 해외 사업장을 보유한 150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이 기업의 5.6%가 국내로 유턴하면 20조4000억 원의 국내생산 전환이 가능해 이로 인한 전후방·직간접 고용 효과가 13만 명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2014년부터 올해 3월까지 9년여 동안 리쇼어링 기업은 72곳에 그친다. 이마저 계획 번복이나 폐업 등을 고려하면 68개사에 그치고, 올해는 2개사뿐이다. 오히려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에도 LG전자는 5월 구미공장의 TV·사이니지 생산라인 6개 중 2개를 인도네시아로 옮겼다.

이는 고임금·노동시장 경직성, 과도한 기업규제, 인센티브 부족 등이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공급망 체계 재편이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현상인지, 뉴노멀 시대의 흐름인지 확실하진 않은 상황으로 본다”며 “특히 우리나라 정부 정책에 대한 이점이 비교우위에 있는 상황이 아니라 많은 기업이 유턴을 탈세계화의 대응 방안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미국, 일본처럼 활발하게 리쇼어링이 이뤄지기 위해선 현실을 반영한 유턴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턴 활성화를 위해 업종별 맞춤 정책을 시행하고 단순히 국내 복귀만을 유턴으로 한정하지 않고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투자 활성화까지 그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혁기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유턴정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국이 직면한 환경, 리쇼어링 집계방식, 지원 정책을 포함하는 종합적 비교와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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