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뉴욕시간) 열린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 선언’을 언급한 것은 남북한 관계 경색과 북미대화 중단 등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답답한 국면을 풀어낼 모멘텀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종전선언 당사자가 한국과 북한, 미국인만큼 이들에게 국제여론을 환기하는 방식으로 보낸 우회 메시지라는 해석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열린 제75차 유엔 총회 일반토의에서 유엔 회원국 중 10번째로 기조연설을 하면서 ‘한반도 종전 선언’과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를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우선 종선선언과 관련해 “한반도에 남아있는 비극적 상황을 끝낼 때가 됐다”면서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종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시작은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도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를 향해 한반도 종전선언 협력을 요청한 것은 남북미 3국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현 상황을 고려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종전선언은 문 대통령이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주요 모토이자 출발점에 해당한다. 평화체제정착까지 가는 여정을 종전선언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호응이 없는 데다 미국 측마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하면 반응이 시큰둥한 상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국제사회의 지지 통해 답보상태를 타개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활성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고, 나아가 세계질서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한 점도 유엔 회원국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다만 정작 당사자인 북한 미국이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문 대통령의 종선 선언은 미국 측이 ‘조건’을 달면서 답보상태에 빠졌는데, 이 조건이 달라졌는지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종선선언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북한에 핵시설 신고를 요구했고, 북한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이번 제안이 힘을 발휘할지는 미국이 ‘조건부 선언’을 철회했는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외교가의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연설내용을 북한이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면서 “그것은 결국 미국 입장이 무엇이냐에 달렸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북한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 창설을 제안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국제사회 공동의 이해가 걸린 문제이자 인도적 차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코로나19를 통해 북한과의 대화 및 협력창구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을 포함해 중국과 일본, 몽골, 한국이 함께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를 제안한다”면서 “여러 나라가 함께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하는 협력체는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다자적 협력으로 안보를 보장받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역·보건 협력체를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와 소통하는 무대로 끌어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외교가 관계자는 “통상 동북아 협력체에 포함되는 러시아를 빼고 북한이 들어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실수로 러시아를 제외한 것이 아닌 이상 문 대통령의 이번 동북아 협력체 제안은 사실상 북한을 위한 특별기구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