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FDA는 이례적으로 일요일인 이날 성명을 내고 코로나19에 걸렸다가 회복한 환자의 혈장을 이용한 치료를 긴급 승인했다. 혈장 치료는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완치된 사람의 혈장을 환자에게 투여해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갖게 하는 치료법으로, 에볼라 등 감염병 치료에 사용돼 왔다.
FDA는 성명에서 “지금까지 미국에서 코로나19 환자 7만 명이 혈장치료제를 처방받았고, 이 중 2만 명을 상대로 분석한 결과, 치료제의 안전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입원 후 사흘 안에 코로나19 혈장치료제를 처방받은 환자들의 사망률이 감소하고 상태가 호전됐다는 것이다. 특히 80세 이하 환자와 호흡기를 달고 있지 않은 환자에서 혈장 치료제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고 FDA는 덧붙였다.
피터 마크스 FDA 생물의약품 평가연구센터장은 “혈장 치료제와 관련해 안전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FDA의 긴급사용 승인 소식에 브리핑을 자처, “혈장 치료를 통해 사망률이 35% 감소했다. FDA가 이 치료법이 안전하고 매우 효과적이라는 독립적 판단을 내렸다”면서 “우리가 기다려온 아주 대단한 날”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을 비롯한 의료 전문가들은 임상시험 결과가 나오지 않아 혈장 치료가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며 우려를 제기해왔다. FDA도 치료 효과에 대한 증거가 약하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고려해 관련 결정을 미뤄왔었다.
그랬던 FDA가 트럼프의 ‘비난’ 트윗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꿔 긴급사용 승인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는 전날 트위터로 “누군가가 FDA를 통해 제약회사들이 백신과 치료제를 시험하기 위해 대상을 확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면서 “코로나19 관련 해법이 11월 3일 대선 이후로 미뤄지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비난했다.
FDA가 긴급사용 승인을, 그것도 이례적으로 일요일에 전격 발표한 것을 두고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의 정치적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공화당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시점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재선 성공을 위해 선거 전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같은 날 트럼프 행정부가 3상 임상시험을 마치지 않은 백신의 패스트트랙 적용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행정부가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학이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에 대해, 대선 전 미국에서 사용이 가능하도록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패스트트랙’을 적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지난달 30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와의 면담 때 미국에서 3상 임상시험을 마치지 않은 백신의 긴급사용을 승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 중인 백신이 가장 가능성 있는 후보라고 덧붙였다.
아스트라제네카는 현재 영국,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2상과 3상 임상시험을 동시에 진행 중이며 9월까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대규모 3상 시험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아직 3상 임상시험 결과가 나오지 않은 가운데 패스트트랙 검토는 이례적인 움직임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백신 승인을 앞당기기 위해 절차를 무시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상 FDA는 미국 내 백신 사용 승인에 앞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의무화하고 있다.
한편 아스트라제네카는 미국 내 코로나19 백신 긴급 사용과 관련, 미국 정부와 논의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