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술 확보에 주력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불확실성의 시대에 기술력만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는 판단 아래 이같은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초격차'를 외치며 경쟁사와 차별성을 강조하는 CJ제일제당은 국내 식품기업 중 연구개발(R&D)에 가장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 곳으로 꼽힌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올해 1분기 연구개발비로 363억 원을 썼다. 이는 전년 동기(322억 원) 대비 12.7%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유휴 자산을 매각하며 고강도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실시했음에도 R&D 비용은 되레 늘었다.
CJ제일제당은 실제로 △2017년 1156억 원 △2018년 1252억 원 △2019년 1433억 원 등 매년 연구개발비용을 늘리며 제품력 강화ㆍ신성장 동력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료용 아미노산 생산 품목 확대'라는 성과를 냈다. CJ제일제당은 필수 아미노산 중 하나인 ‘류신(leucine)’을 친환경 공법으로 양산할 수 있는 생산기술을 확보해 연내 생산에 들어간다.
친환경 공법에는 CJ제일제당이 60여 년간 쌓아온 미생물 발효 R&D 역량과 첨단 기술이 집약돼 있다. 이를 통해 아미노산 생산 과정에서 발생되는 폐수나 폐가스(gas) 발생을 줄이고,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원재료인 곡물을 재생산하는 비료로 활용할 수 있다.
연구개발을 위해 외부와 협력도 활발하다. CJ제일제당은 서울대병원과 손잡고 신장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식이기록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양측은 개인 식이기록을 임상지표와 연계한 식이관리 앱을 개발해 국민의 질환 예방과 치료를 돕는다는 방침이다.
CJ제일제당은 "향후 식이기록 앱에 적용 가능한 질환의 종류와 규모를 확대하고, 분석된 데이터를 토대로 식품 개발과 개인 맞춤형 플랫폼 서비스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은 롯데중앙연구소를 통한 기술 확보에 한창이다. '롯데그룹 R&D 심장'으로 불리는 롯데중앙연구소는 식품 관련 제품 개발뿐 아니라 그룹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기초 분야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롯데중앙연구소는 이달 '부산물을 활용한 자원 선순환 연구'를 위해 코씨드파이오팜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회사 관계자는 "식품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현재는 사료 쪽으로 활용 중인데, 다른 방법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위한 업무 협약"이라고 설명했다.
3월에는 바이오기업인 바이오제네틱스, 위드바이오코스팜과 대체육 개발 관련 업무 협력을 체결하기도 했다. 롯데푸드는 최근 식물성 대체육류 브랜드 '제로미트'의 라인업을 강화하며 미래 먹거리인 대체육 시장을 겨냥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해외 투자로 기술 확보에 나선 업체도 있다. 원양어업와 수산물 가공업 등을 영위하는 동원산업은 노르웨이의 연어 양식 스타트업 새먼 에볼루션(Salmon Evolution)과 지분 투자 협약을 맺었다.
투자 규모는 약 65억 원으로 이는 전체 지분의 약 10%에 해당한다. 새먼 에볼루션은 2017년에 설립된 노르웨이 기업으로 최적의 바다 환경을 육상에 구현해 친환경적으로 연어를 양식할 수 있는 ‘해수 순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술은 오염된 양식장 해수를 주기적으로 전면 교체해야 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35%의 해수만 교체하고 65%의 해수는 지속적인 순환을 통해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해 양식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교체한 35%의 해수는 여과 장치를 거쳐 오염물질을 제거한 뒤 배출돼 친환경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동원산업은 이번 투자 협약을 통해 안정적인 대서양 연어 수입 경로를 구축하는 동시에 ‘해수 순환’ 기술을 확보하게 됐다. 이를 통해 국내 수입 연어의 약 20%를 유통하는 동원산업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동원산업과 함께 동원그룹 식품 계열사인 동원F&B의 연구개발비용도 늘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의 연구개발비용은 860억 원을 기록해 전년(778억 원) 대비 10% 이상 증가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식품은 생활필수품이라는 특성상 코로나19에도 매출을 유지했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경쟁자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면서 "장기간 생존을 위해서는 차별화가 필수요소인 만큼 기술 확보를 위한 기업의 노력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