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업계에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한 이른바 ‘나노 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매출 기준 세계 1위 반도체업체 미국 인텔과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을 지배하는 대만 TSMC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인텔은 최첨단 7nm(나노미터, 10억 분의 1m) 칩 양산의 장기간 지연을 예고하면서 파운드리에 위탁 생산하는 신세로 전락한 반면, 인텔 최대 라이벌인 AMD 제품을 생산하는 TSMC는 인텔 수주까지 유력해지면서 최근 주가가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
2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TSMC 주가는 전날의 폭발적인 상승에 이어 이날도 1.88% 급등한 432.50대만달러로 마감해 이틀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날 TSMC 주가는 대만증시 일일 변동 폭 한계인 10%까지 폭등한 상태로 거래를 마감했다. 이에 TSMC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월마트를 제치고 세계 12위 기업에 올랐다. 이날은 존슨앤존슨(J&J)과 비자까지 뛰어넘어 세계에서 10번째로 가치 있는 기업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TSMC의 올해 주가 상승폭은 31%로 확대됐다.
반면 올해 인텔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전날 미국 뉴욕증시가 강세를 보였음에도 인텔 주가는 2% 급락한 49.57달러로 마감, 올 들어 하락 폭을 17%로 넓혔다.
앞서 인텔의 밥 스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3일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우리는 타사의 제조 공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 준비를 하고 있다”며 “회로선 폭이 7nm인 첨단 반도체 양산 시기가 2022~2023년으로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은 오랫동안 글로벌 반도체업계의 리더로 군림하면서 설계와 생산의 두 축을 토대로 성장하는 전략을 고집했는데, 결국 TSMC와 삼성전자에 두 손을 들어버린 셈이다. 이에 인텔 주가는 실적 발표 다음 날 16% 폭락했다. 이 여파로 한때 인텔 CEO 후보로도 거론됐던 벤카타 무르티 렌두친탈라 최고기술책임자(CEO)가 8월 3일 자로 사임하게 됐다. TSMC, 삼성과의 기술전쟁에서 패배한 책임을 진 것이다.
더 나아가 인텔은 TSMC의 최근 증시 랠리에 불을 붙이는 굴욕적인 역할까지 맡게 됐다. 인텔이 내년을 위해 TSMC에 6nm 칩 18만 개를 주문했다는 대만 언론의 보도로 전날 TSMC 주가가 상한가를 친 것이다.
인텔은 아직 향후 첨단 반도체 아웃소싱을 어디에 맡길지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시장은 이미 TSMC가 맡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7nm 제품을 양산할 수 있는 업체는 TSMC와 삼성전자 2곳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 관계자들은 “TSMC가 5nm 양산에서도 실적을 올리고 있어 인텔의 주문을 따낼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TSMC는 미·중 갈등 속에서 매출의 14%를 차지하는 중국 화웨이테크놀로지와 결별을 택했는데, 인텔 제품 생산을 수주하면 그 공백을 채울 수 있게 된다. TSMC는 지난 5월 미국 애리조나주에 새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삼성도 혜택을 일부 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국 CNBC방송은 파운드리 사업을 펼치는 삼성도 인텔 물량 일부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