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중국은 반도체 국산화를 목표로 자금 조달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현지 반도체 기업들이 조달한 자금 규모는 약 1440억 위안(약 24조4000억 원)에 달한다. 반년 만에 지난해 연간 조달액인 640억 위안 대비 2.2배 급증한 것이다.
자금 조달 주역은 국부펀드와 지난해 설치한 ‘중국판 나스닥’인 상하이거래소의 커촹판(科創板·과학혁신판)이다.
중국 정부는 2014년 1300억 위안 규모로 조성한 ‘반도체 펀드’를 통해 반도체 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전방위적 투자에 나섰다. 작년 가을 2000억 위안 규모의 제2호 반도체 펀드를 신설했고, 올해부터 이 펀드가 투자를 본격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상하이와 베이징 등 지방정부도 자체 펀드를 출범, 중앙정부와 혼연일체로 반도체 굴기를 지원하고 나섰다.
중국 기업들도 실탄 마련에 발 벗고 나선 상태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로 올해 조달액은 업계 전체의 절반에 달한다. 또 홍콩증시 상장사인 SMIC는 이달 커촹판에 2차 상장해 최대 530억 위안을 조달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펀드로부터 대규모 자금도 지원받는다. 이를 통해 설비 확장과 기술 개발에 투자에 나서 세계 최대 파운드리 대만 TSMC를 대체한다는 목표다.
반도체 굴기를 향한 중국의 거침없는 행보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의 첨단 산업 패권을 저지하기 위해 반도체 전쟁에 나선 상황이다. 자국은 물론 주요국에 중국 기업의 시장 퇴출을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를 제재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화웨이테크놀로지와 ZTE 등 중국 통신장비업체의 미국 내 판매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1년 연장했다. 최근 미 연방통신위워회(FCC)는 화웨이와 ZTE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지정하고 미국 기업들이 정부 보조금을 사용해 이들 기업의 장비를 구입할 수 없도록 했다. 미국 기업의 이들 중국 업체에 대한 수출도 제한하고 있다.
미국의 잇단 제재로 중국은 첨단 반도체 부품 조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이 10%대에 불과한 가운데 이는 막대한 타격이다. 또 중국이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스마트폰과 차세대 통신 규격인 5세대(5G) 통신장비의 시장점유율을 급속도로 늘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부품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 제재에 맞서 중국이 반도체 국산화에 목숨을 거는 이유다.
중국은 첨단산업 육성 정책인 ‘중국제조 2025’에서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이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다만 미국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트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24년에야 2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과제도 있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은 세계 유수의 기업에 현저히 뒤처진다. SMIC의 기술 수준은 TSMC에 비해 “2세대 이상 늦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목표대로 국산화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금뿐만 아니라 기술 면에서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