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기준 강화', '실거주 의무 부여', '재건축 부담금 본격 징수'. 정부가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에 세 가지 난제를 던졌다. 이제 막 재건축을 향해 발을 뗀 단지들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17일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 방안'을 발표하며 "재건축 안전 진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조합원의 분양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서울에서 30년 넘은 재건축 아파트의 일부가 안전진단을 통과하면서 그 일대 지역의 호가 상승이 지속되고 있다"며 정책 배경을 설명했다.
국토부는 그동안에도 재건축 사업이 과열되는 것을 경계해왔다. 재건축 호재가 그 단지는 물론 주변 지역 집값까지 띄운다는 문제 의식에서다. 실제 이달 서울 양천구 목동6단지가 재건축을 위한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하자 지난달 10억 원대에 거래되던 이 아파트 전용면적 47㎡형이 13억 원까지 값이 올랐고 주변에서도 매물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재건축 단지가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난관은 안전진단 기준 강화다.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면 조합 설립 등 재건축 추진에 필요한 첫발조차 떼지 못한다.
국토부 등은 정밀안전진단(2차 안전진단)을 엄격히 하는 데 정책 초점을 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안전진단이 강화되면서 한 번에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고 2차까지 가는 단지가 늘고 있어서다. 이번 대책에서 국토부는 2차 안전진단에서 재건축 필요성을 부문별로 평가하고 현장 실사도 의무화하기로 했다. 안전진단을 잘못하면 평가기관을 제재하겠다고도 엄포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책 기조면 1차 안전진단에서 '재건축 판정'을 받고도 2차 진단에서 결과가 뒤집히는 일이 늘 수 있다고 예상한다. 서울의 재건축 대어로 꼽히는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단지들만 하더라도 5ㆍ9ㆍ11단지가 1차 안전진단을 '조건부 통과'하고 2차 진단을 기다리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본격적인 재건축을 추진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절차 이행이 필요해 재건축 첫 단추 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조합원 분양에 대한 실거주 의무는 이번에 새로 나온 정책이다. 국토부는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에선 분양 전까지 2년 이상 실거주해야 조합원 분양 자격을 주겠다고 밝혔다. 법 개정을 거쳐 내년 재건축 조합 설립 인가를 신청하는 단지부터 적용한다는 게 국토부 목표다. 안전진단을 통과하고도 조합 설립이 늦어지면 이 같은 규제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크다. 주요 재건축 단지 가운데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이 이 갈림길에 섰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재건축 추진 초기 사업장에선 실거주 의무가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해 투자 수요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강화된 안전진단을 통과할 정도면 재건축 아파트는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노후했을 가능성이 커서다.
국토부의 마지막 카드는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다. 재건축 전후 집값을 비교해 그 차익 일부를 재건축 부담금으로 거둬가는 제도다. 위헌 시비가 있었으나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이 제도에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굴레를 벗었다.
국토부는 2018년부터 이달까지 62개 단지에 재건축 부담금으로 총 2533억 원을 부과했다. 국토부 자체 시뮬레이션에선 강남권 단지에선 조합원 한 명당 4억~5억 원대 재건축 부담금을 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만큼 재건축 사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에선 이 같은 규제가 자칫 주택 공급 부족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 지역에서 핵심적인 주택 공급 수단으로 자리 잡은 재건축 사업이 둔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선호는 결국 새 아파트 희소성과 공급 물량에서 나온다"며 "재건축 사업이 어려워지고 공급이 줄면 신축 아파트의 가치는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 연구원도 "재건축 추진 단지 중 속도가 늦어지고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단지가 나오면 반대로 성공적으로 분양까지 마칠 수 있는 대형 재건축 단지는 더 희소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