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쑥대밭으로 만든 메뚜기 떼가 중동과 아시아로 진격하면서 새로운 불황의 전조로 떠오르고 있다.
대규모 메뚜기 떼가 파키스탄 농업지대를 습격해 약 30년 만에 최악의 피해가 나오고 있다고 AFP통신이 8일 보도했다. 이 여파로 작황이 좋지 않아 식량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또 당국이 사용하는 살충제는 먹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메뚜기를 제거하더라도 남은 농작물은 폐기해야 한다. 일부 농가에서는 살충제 살포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고육지책으로 냄비를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 메뚜기를 쫓기도 한다.
유엔은 지난해 아라비아반도를 덮친 호우와 사이클론이 전례 없는 메뚜기 번식을 부채질했다고 지적했다. 메뚜기의 산란 시즌이었던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강수량은 예년의 약 3배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뚜기 떼는 동아프리카에서 인도에 걸쳐 농지에 큰 피해를 입힌 후 이란을 통해 파키스탄 남서부 사막지대에서 파키스탄 전역으로 날아들었다. 파키스탄 정부는 피해가 심각하다고 보고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한편 국제 사회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중국은 이달 초, 메뚜기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파키스탄에 전문가 팀을 파견했다. 중국은 신속하고 효과적인 해법으로 살충제를 공중 살포할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점 중 하나. 메뚜기 떼는 중국 서부까지 진출한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지원은 당연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도 벅찬 상황에서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통신은 오랫동안 가뭄에 허덕여온 파키스탄 농업이 이번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큰 위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12년 연속 하이 인플레이션에 고통받는 파키스탄에 식품 인플레를 야기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설탕 가격은 2배 가까이 뛰었고, 밀가루 가격은 15% 상승했다.
앞서 아프리카 소말리아는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식량 위기가 불거지면서 25년 만에, 이웃 나라 케냐에서는 70년 만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후 메뚜기 떼는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반도, 페르시아만을 넘어 아시아까지 날아왔다. 지난 6일 시점에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동아프리카 8개국, 중동 5개국, 남아시아 2개국(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 새로운 메뚜기 떼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파키스탄 북동부에는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있다. 즉, 메뚜기 떼는 서쪽에서 바람을 타고 중국으로 날아들 수 있다. 중국의 파키스탄에 대한 지원은 단순히 외교적인 관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자기 방어를 위한 비책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메뚜기 떼의 등장을 간과할 일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2003~2005년 아프리카와 중동 20개국에서 메뚜기 떼가 극성을 부릴 당시, 대책에 든 비용은 총 4억 달러를 넘어섰고, 서아프리카 6개국에서만 838만 명이 식량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에 FAO는 각국에 약 1억3800만 달러의 자금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다. 코로나19로 각국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 여력이 부족해서다. 3일까지 지원 규모는 5200만 달러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메뚜기 떼가 촉발한 식량난이 새로운 공급망 혼란을 일으켜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