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60대 주부 강 모 씨는 최근 쿠팡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백화점 문화센터를 같이 다니는 지인이 진작 추천해줬지만 그땐 귓등으로 들었다. 집 앞 5분 거리에 홈플러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외출을 자제하게 되자 아들에게 부탁해 가입했다. 걸린 시간은 불과 20분 내외. 라면과 생수, 채소 등을 검색하고 싼 가격에 놀랐다. 저녁에 주문해도 다음날 새벽 도착에 한 번 더 놀랐다. 다음 번엔 홈플러스 온라인몰에도 가입해 볼 요량이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은 쿠팡이라는 '슈퍼스타'를 낳았다. 당시 벤처 회사에 불과했던 쿠팡은 2015년에만 매출이 3배 가까이 늘었고, 5년 만에 대형마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컸다. 코로나19에 강타당한 지금 국내 유통업계의 관심은 어떻게 시장 판도가 재편될지다.
외출 자제로 손님이 준 데다 확진자가 다녀간 매장의 휴점까지 덮치며 오프라인 기반 전통 유통업체들이 이중고를 겪는 가운데 이들의 몫은 고스란히 이커머스 업체들에 돌아갔다. 선두업체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업계가 늘어난 손님을 할인을 무기로 충성고객화하는 가운데 고전 중인 대형마트업계도 전열을 가다듬으면서 '제 2의 쿠팡'을 노리고 있다.
◇ 스타트업에서 유통공룡으로...메르스가 낳은 슈퍼스타 ‘쿠팡’
1일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3년 30조원이던 국내 유통 시장규모는 지난해 약 93조 원을 기록했다. 가파른 성장세 속에 올해는 100조원을 넘어 설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오프라인 유통시장은 2013년 200조 원에서 지난해에는 230조 원에 그치며 정체기에 머물러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온라인이 본격적으로 오프라인을 추격하게 된 계기를 메르스 사태로 본다. 10% 내외로 성장하던 온라인 시장은 메르스 사태 이후 매해 20%씩 속도를 높였다. 당시에도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리던 소비자들은 온라인 유통 세상에 눈을 떴다.
가장 공격적으로 치고 나간 업체는 쿠팡이다. 오픈마켓처럼 24시간 주문할 수 있는 데다, 배송도 빨랐다. 로켓배송을 이용하면 다음날이면 주문 상품이 집 앞에 배송됐다. 쿠팡 매출은 2013년 3000억 원대에서 2015년 1조 원대로 껑충 뛰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쿠팡에 대규모 투자를 한 시기도 이 때다.
쿠팡의 지난해 추정 매출은 6조 원대로, 국내 2, 3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6조4101억 원, 2018년)와 롯데마트(6조3306억 원)과 엇비슷하다. 쿠팡이 사업 시작 10년만에 대형마트와 어깨를 견주게 된 셈이다. 2020년 예상 매출은 8조2000억 원으로 이들을 뛰어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손님도 없는데 휴점까지...오프라인 유통가는 ‘이중고’
메르스가 덮친 지 5년이 흘러 코로나19가 또 터졌다. 재래시장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줄줄이 휴장에 들어갔고, 마스크로 유혹한 대형마트 고객들은 당장 급한 라면과 생수, 즉석밥 등 생필품에만 관심 가질 뿐 오래 머물길 주저한다. 백화점과 면세점을 가득 메웠던 국내외 소비자들도 일부 명품을 제외하곤 발길을 끊었다.
가뜩이나 손님이 줄어든 마당에 확진자가 거쳐갔다는 이유로 휴점에 나서면서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백화점 매출 1, 2위 점포인 신세계 강남점과 롯데 소공동 본점마저 휴점하면서 백화점 3사는 2월 들어 매출이 10~20% 이상 급락, 손실은 20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 감소로 면세점의 매출 감소 예상액도 1000억 원 이상이다. 여기에 대형마트 휴점에 따른 손실까지 더하면 유통업계 전체 매출 충격은 50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관측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월 손실 전망치 5000억은 보수적인 시각”이라면서 “고객이 다시 찾는다는 보장도 없어 올해 장사는 완전 망쳤다”고 푸념했다.
◇이커머스, 승자독식 효과 현실화...쿠팡, 코로나19로 ‘왕좌’ 굳히나
역시나 온라인 업계는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에도 마스크를 비롯한 생필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몰려들며 연일 품절 사태다. 배송 지연 사태가 나타나면서 대형마트 매장도 북적이긴 하지만, 그야말로 뭘 해도 ‘先 온라인, 後 오프라인’ 분위기다.
쿠팡과 마켓컬리는 배송 캐파를 넘어서는 주문 폭주로 수시로 품절 메시지가 뜨고, SSG닷컴의 예약주문배송인 ‘쓱배송’의 주문 마감율은 80% 수준에서 최근 99.8%까지 치솟았다. 평소 1~2일 걸리던 G마켓이나 옥션, 11번가 등 오픈마켓의 일부 생필품 배송일도 며칠씩 밀리는 일이 잦다. 이커머스 관계자는 “나라가 어려운데 잘 된다는 뉘앙스를 풍기지 않게 입단속하고 있다”고 전할 정도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업체는 쿠팡이다. 갖춰놓은 인프라의 차원이 다르다는 점에서다. 신선식품 새벽배송으로 대형마트의 파이를 노리는 업체는 마켓컬리와 헬로네이처 등 많다. 하지만 전국 단위 서비스는 쿠팡뿐이다. 이 회사는 전국에 100여 개가 넘는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대형마트들이 온라인몰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아직까진 규모면에서 역부족이란 평가다. 쿠팡의 하루 주문 처리 물량은 300만 개, 대형마트 온라인몰의 처리 물량은 하루 10만 개 내외다.
온라인 업체 관계자는 “메르스 때 경험이 있어 각 업체들이 온라인 전략을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은 쿠팡 인프라에 많이 못 미친다”고 분석했다. 말 그대로 출혈경쟁 끝에 최후의 승자만 살아남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구도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 대형마트도 온라인몰 속도전…후광 효과로 반격 나선다
대형마트도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가 장기전에 돌입한 가운데 쿠팡이나 마켓컬리에서 생필품 품절이 나자 대형마트 온라인몰로 시선을 돌리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온라인몰 사업을 하는지도 모르는 소비자가 많았다”면서 “손해를 보면서 까지 할인과 캐파 확장을 통해 신규 회원 유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지난달 20~26일 홈플러스의 온라인몰 매출은 전년대비 162% 늘었고, 2월 한달 신규 가입 고객 수는 30만 명을 넘어섰다. 하나금융투자는 SSG닷컴의 1~2월 매출이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SSG닷컴은 ‘쓱배송’ 물량을 20% 확대했고, 새벽배송 물량도 하루 1만5000건으로 50% 늘리며 몰리는 고객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롯데마트도 배송차량을 20% 증차하고, 물류센터 인력을 14% 확대했다. 홈플러스는 배송 물량을 20% 늘렸고, 생필품 할인으로 고객 유치에 나섰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온라인몰이 엄청난 속도로 신규 회원을 유치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전통 유통업체의 후광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