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공포가 금융시장을 뒤덮은 가운데 안전지대로 각광 받아온 채권시장도 무조건 안심할만한 투자처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1.30%로 떨어지며, 2016년 6월 기록한 사상 최저치(1.32%)를 하회했다. 올해 들어서만 0.6% 가까운 하락으로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까지 내려갔다. 30년물 국채 수익률도 전장보다 4.6베이시스포인트(bp) 떨어진 1.80%를 기록하며 사상 최저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코로나19 감염이 이탈리아, 이란 등 중국 이외 지역으로 확산하자 자금이 국채 같은 안전자산에 쏠린 영향이다. 지난주까지 상승세를 타던 주가가 팬데믹 공포에 급락하면서 주식 보유 위험이 커지자 리스크 헤지 차원에서 변동성 작은 채권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 세계 주식펀드에서 43억 달러(약 5조2000억 원)가 빠져나간 대신 채권펀드에는 30억 달러가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채권시장도 코로나19 충격파에서 무조건 안전지대인 것은 아니다. 주목할 건 미국 증시가 가파른 하락세로 전환한 상황에서 금리까지 동시에 하락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장기 금리가 내려가면 경기를 뒷받침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주가가 회복되는 장면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주 들어서는 장기 금리가 급격히 떨어져도 미국 증시가 살아나기는커녕 이틀 연속 큰 폭 하락했다.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장기 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뺀 실질금리다. 현재 실질금리는 이미 마이너스(-)권에 진입했다. 2011~2013년경 미국의 실질금리가 대폭 마이너스가 됐을 때도 주가는 약세였다. 전문가들은 “시장 참가자들은 실질금리의 마이너스를 기술적 시그널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여지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지난 21일 뉴욕에서 각국 중앙은행 간부와 전문가, 금융권 관계자가 모이는 토론회가 있었다. 당시 화두는 “다음 경기 침체 시 중앙은행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연준의 기준 금리는 1.50~1.75%. 토론회에 참석한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는 “과거 경기 침체 시의 대응에 비해 절반 정도 밖에 금리 인하 여지가 없다”고 인정했다.
23일 폐막한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논의의 중심은 코로나19였다. 각국은 정책을 총동원하겠다는 의지를 공동 성명에 담았는데, 이는 금융완화 여지가 제한적이어서 재정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수그러들지 않고, 국가 간 결속이 늦으면 시장의 동요는 더욱 거세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