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총리는 이번 비공개 만남에서 금융노조가 총선을 앞두고 작성한 정책협약서 내용을 살펴본 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에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종로 출마를 선언한 이 전 총리가 10만 금융노동자들의 표를 갖고 있는 금융노조와 비밀리에 만난 것은 표를 담보로 특정 정책을 약속하는 ‘선거포퓰리즘’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전 총리는 지난 10일 금융노조 간부들과 비공개로 만나 정책협약서에 담긴 금융권 이슈를 논의했다. 금융노조는 정책협약서에 △금융권 직무급제 도입 거부 △노동이사제 도입 △공공기관 예산 지침 폐지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해당 정책협약서는 2주 전 금융노조가 총선을 앞두고 새롭게 작성한 것으로, 국회 내 각 정당에도 전달될 예정이다.
금융노조는 금융권의 업무 특성상 일률적 직무급제 도입이 어렵고, CEO의 경영 리스크를 막기 위해 근로자가 이사회에 참여해 발언권·의결권을 행사하는 노동이사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국책은행의 경우 공공기관 예산지침으로 인해 경영 자율성이 침해되고, 단체교섭권 자유가 훼손되기 때문에 예산지침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지만 어느 후보도 직무급제 도입을 주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10만 금융노동자의 표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면서 “이번 비공개 회담도 금융노조와 이 전 총리가 서로 필요한 것들을 오픈하는 자리였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금융노조의 정책협약서는 선거철마다 주기적으로 거래 대상으로 악용됐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에도 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금융노조 정책협약서’를 체결하고 낙하산 인사 근절, 금산분리 원칙 준수, 노동이사제 도입, 노사관계 정상화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 당선 이후 3대 국책은행이 모두 낙하산 인사로 채워지면서 허위 공약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논의해 보자는 수준에서 얘기가 오간 것이지 구체적으로 진척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 선거사무소 관계자는 “이번 만남은 언론 공개 행사가 아닌 비공개 일정으로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